복날과 개장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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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과 개장국 (2)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8.0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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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우리음식의 맛은 장(간장·된장·고추장 등)이 좌우한다고 했다. 음식 맛의 기준이 되는 장의 ‘삭힌 맛’은 오랫동안 숙성시켜야만 얻을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이 든다. 어찌 오래되어야 맛이 드는 것이 장맛뿐이겠는가. 우리 한국인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시간만큼 정(情)이 든다. 그래서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처럼 내가 다소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정 때문에 사람을 선뜻 내치지 못하는 ‘삭힌 맛’과 같은 심성을 지녔다.

이처럼 보관에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발효식품은 먹을거리를 쫓아서 이동생활을 하는 채집·수렵사회나 계절마다 목초지를 옮겨 다녀야만 하는 유목민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며, 요즘처럼 햇볕과 바람이 차단된 아파트와 집단주거 공간이 대세를 이루고, 이사가 잦은 사회에서도 매우 어렵다.

따라서 우리민족이 발효식품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한 곳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했음을 말한다. 우리가 다른 민족에 비해 일찍 농경생활을 해왔다는 증거는 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호리에 출토된 4종의 볍씨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소호리 볍씨’는 그 동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졌던 중국의 ‘후난성 볍씨’보다 3천년이나 앞섰으며(제 5회 세계고고학대회,2003,이융조), 이 4종의 볍씨 중에는 볍씨 스스로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는 야생 벼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거두고 뿌려야 재배가 가능한 종이 있다고 하니 기술력 또한 높이 살만하다.(박태식,농촌진흥청.2003)

위의 연구결과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먼저, 1만5천 년 전부터 벼농사를 해왔다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으나 이 사실하나 만으로 발효식품을 설명하기는 무언가 부족하다. 앞서 정(情)이라는 심성은 인간관계가 오랫동안 숙성되어 나타나는 삭힌 맛과 같다고 했듯이 우리는 다른 민족에 비해 변란을 적게 겪었음을 말한다. “태어나서 십리 밖으로 나갈 일 없이 살다 죽으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하는데서 보듯이 변란이나 개인적인 어려움이 생기면 생활터전을 버리고 이동 할 수밖에 없다. 이때 음식물이 담겨져 있는 장독과 김장독을 짊어지고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

식민사관에 찌들은 일부 역사학자들은 우리역사를 말 할 때 나라가 허약하여 잦은 외침을 받았고, 민중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고 말하지만, 전 세계 어느 민족의 역사와 비교해 보아도 우리처럼 안정적 국가형태를 유지하며 태평성대를 구가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면 일본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절대로 남에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이번 ‘쓰나미’에서도 보았듯이 설령 집안에서는 슬퍼하고 펑펑 울지 몰라도 남들 앞에서는 “우리 가족이 이런 사고를 당해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한다. 일본인들이 ‘절대로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감정을 들어내서는 안 되는 심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일본의 역사가 각 지방을 차지하고 있는 사무라이들의 패권 다툼으로 인한 치열한 전쟁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의 역사도 마찬가지 이다. 우리는 이중인격자를 기피하지만 중국인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을 바보라고 할 만큼, 이중인격이 당연하고 그렇게 가르친다고 한다. 이러한 중국역시 춘추(100여 개국이 다툼), 전국(200국이 싸워서 10개국으로 정리 됨)시대와, 다섯 민족이 16개의 나라를 세웠던 ‘5호16국 시대’ 등등 끝없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이중인격을 가져야 했으며, 음식 또한 재료를 가리지 않고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사용해야 하고, 빨리 해먹어야 하므로 기름에 튀기거나 볶는 것으로 발달되었다. 그리고 채소 등을 물로 씻지 않기 때문에 위생을 걱정하여 날 것보다는 대부분 익혀서 먹는다.

물건을 사고 팔 때도 한국 사람은 정이 있어서 1000원 짜리물건을 900원에 깎아 주기도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아예 900짜리를 다시 만들어서 준다. 그래서 수입을 할 때 단가를 낮추어 달라고 하면, 일단 팔고 봐야하니 ‘네~’하고 대답하고서는 그 가격에 맞는 상품을 다시 만들어 납품한다고 한다. 경제와 인간관계를 동일하게 보는 심성을 가졌다 보니, 돈 생기는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고,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한낮에 대로변에서 사람이 죽어도 그냥 지나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었다.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 같지만, 음식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는 그만한 역사적배경이 있으며, 사람들의 심성 역시 음식처럼 역사와 환경이 만들어 낸다. 특히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랜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며, 비교적 이동이 적고 안정적 사회에서 만이 가능한 발효식품과 토속음식들을 통해서 우리민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정서와 심성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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