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민(愛民) 군주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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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민(愛民) 군주 ‘세종대왕’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10.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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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해서 복지학을 배운다며 서너 해 동안 벌집이라고 불리는 판자촌에 기거한 적이 있다. 삶이 고단하고 가난할수록 부부싸움이 잦고, 애환만큼 거칠어진다. 대부분 싸움이 극에 달하면 남편은 장인장모를 욕하고, 부인은 시부모를 욕한다. 즉, 너는 처음부터 근본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터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비리를 보면서 과연 대한민국의 정치는 근본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의심이 간다. 필자가 말하는 정치의 근본이란, 대한민국의 근간을 명시하고 있는 헌법을 운용하는 철학과 사상을 말하고, 더 나아가서 정치인 개개인들의 인성을 포함하여, 우리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행동양식의 기준을 궁구(窮究)해 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은 유학을 근본으로 하는 조선의 임금이었다. 민주주의라는 현재에서 보면 왕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절대 권력자로서 부정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교적 입장에서는 하늘로부터 왕에게 부여된 권력은 만백성을 돌보는 자애로운 어버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이다.

이것을 공자는 인(仁)이라고 했으며, 인의 실천에 있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은 인의 시작이요, 널리 베풀어서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인의 완성”이라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은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퀴의 회전이 멈춘 자전거는 넘어지듯이 끊임없이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어느 제자도 인하다고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도 인하다고 자처하지 않았다.

이러한 인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사욕을 극복하고 천리를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으로서, 사사물물(事事物物)의 원리를 인식하여 마음을 공평하게 유지함을 말한다. 이때 사사물물의 원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지각으로서 지(智)가 요청된다. 앞서 말했듯이 인은 완성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지로써 인을 인식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으로 지키지 못하면 상실하고 말 것이요, 인을 좋아할지라도 배움을 게을리 하면 어리석은 폐단을 낳게 된다”며 다시 한 번 인의 실천을 강조한다.

임금에게 인이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며, 관료들에게 인은 임금과 국가에 충성하고 백성을 위하는 위민(爲民)인 것이다. 이것은 공자의 가르침이기 이전에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단군성조의 국시이며,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이다. 따라서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을 말할 때 한글의 위대성 이전에 더욱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은 바로 군주가 가지는 애민(愛民) 즉, 인의 실천으로서 국가와 군왕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를 정보화 사회라고 말한다. 이것은 현재뿐만 아니라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다. 마치 코끼리 대장이 가진 정보가 무리전체를 가뭄과 배고픔에서 구해내듯, 인간사회에 있어서 정보(지식)는 곧바로 권력의 힘이 된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과 평민(노예)에게 교육의 기회를 박탈했고, 심지어 어떤 종교에서는 500년 동안이나 성직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경전을 소유하거나 읽거나 다른 언어로 번역을 하게 되면 화형을 시켰다. 지동설을 지지했던 브루노는 종교재판에서 화형을 당했고, 죄인으로 규정했던 갈릴레이를 363년이 지난 1997년에서야 교황이 사면해 준 것은 바로 정보(진리)의 독점이 권력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문자는 정보를 보관하고 전달하는데 있어서 가장 훌륭한 수단이자 권력이다. 대륙을 호령했던 칭기즈 칸의 말발굽과 알렉산더의 칼날이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고, 성현의 말씀처럼 이어지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성은 인하며, 문자와 같은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세종대왕의 위대성은 계급사회에 있어서 신분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자의 권위를 어리석은 백성에게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조선사회에 얼마나 어떻게 구현 되었는지는 연구되어야 하겠지만,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것은 군왕이 부덕해서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선 군왕들의 인은 분명히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대통령이 퇴임 후 거처할 사저를 건축하기 위해서 사들인 부지는 구입절차에 문제가 있고, 행정규제가 풀리면 시세차익이 100억이나 되며, 경호를 위해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대해서 비난여론이 들끓어도 여당은 묵묵부답이고, 청와대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서울시장 선거방송에 술을 먹고 나와 국민을 상대로 횡설수설하며, 자신들의 정당치 못한 부(富)의 축적과 국민의 의무인 병역 기피는 보수이기 때문에 괜찮고, 진보라고 말하는 너는 가난해야 한다는 논리에, 인간의 도리이자 정치인의 도리인 인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갈등은 접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사랑하는 인이 실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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