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은 나의 삶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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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福)은 나의 삶이어야 한다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2.02.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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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일상에서 무심히 사용하는 말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흔히 “코끼리는 크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간의 평균체구가 ‘매머드’ 정도라면 “코끼리를 작다”고 규정할 것이며, 치타처럼 빠르다면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관운장의 적토마의 위용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과 행동의 대부분은 인간의 보편적 능력 내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인간과 비교되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감정표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안녕하세요?”의 인사는 ‘상대에게 그간의 안부를 묻는 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껄끄러운 관계에서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뒤에 “안녕 못하네!”라는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온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안부를 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래전부터 “안녕하세요!”하는 인사말을 ‘(나는)진심으로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좀 더 적극적으로 ‘당신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므로 (나는)당신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담아 보기도 한다.

남녀 간에 있어서 “사랑해”라는 고백이 액면 그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의미라면 사랑의 모든 책임은 언제나 자신이 져야 한다. 설령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약속했다고 할지라도.

그런데 “사랑해”라는 감정의 표현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일방적이어서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는 나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절대 엄명의 요구가 들어있으며, 더 나아가서 ‘나는 다른 사람을 살짝 넘볼 수 있지만 너는 어떤 이유로도 안 돼’라는 심리마저 작용한다.

요즘의 도시산업사회에서는 설날 차례가 끝나기 무섭게 처갓집을 다녀가야 만 연휴기간동안에 새해인사를 마칠 수가 있다. 여기에는 도리의 의무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의무감이 더 깊이 작용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식에게 도리를 요구하는 것은 ‘나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깊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런데 행동이 거북한 시댁보다는 친정에서 쉬고 싶다는 부인과, 상대적으로 부모의 집에 좀 더 머물렀으면 하는 남편의 이기적 갈등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살아계시면 올해로 82세가 되시는 아버님 때만 해도 정초에는 몸을 삼가여 대보름까지는 가까운 집안어른들을 찾아뵙고, 그 다음 보름동안은 교우가 깊은 친구나 동네 분들에게 세배를 다녔으며, 2월 초승이 되어야 비로소 처갓집에 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셨다.

세월이 어떻게 변했든지 간에 새해 한 달 가량은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인사말은 여전하다. 그런데 복을 ‘받아라’고만 하지 누가 어떻게 준다든지 아니면 내가 주겠다는 말은 없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무책임하고 뻔뻔스럽기까지 한 인사말이다. 그런데도 최고의 덕담이 된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류가 발전시켜온 대부분의 종교와 학문 등은 어떤 절대자<神>내지는 절대적 힘<理致>이 있다는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관념(허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양한 입장에서 신이나 이치를 설명하려는 노력과, 그것들(가치관)의 충돌이 인류역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대단한 철학적 논의와 거창한 종교적 노력 그리고 탁월한 시대분석의 탐구 역시 관념이 만들어낸 허상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은 보이지 않는 신이나 절대 힘이 나와 당신에게 복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 즉, 무조건적 기대감의 표현으로서 약간의 플라시보효과는 있을지언정 자신과 상대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노력의 인류역사를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우주와 나의 본질에서 인사를 나누어 보자는 것이다.

이 세계는 어떤 것도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마치 코가 없으면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냄새가 없으면 코의 작용이 없는 것처럼, 이때 둘은 서로 의존관계에 있으므로 무아(無我)이다. 그러므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나는 당신에게 복을 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처럼 상대 역시 나에게 복을 주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더 엄격히 말하면 나의 행동에 따른 대가를 바라는 마음 역시 탐욕이므로 그것마저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매 순간 ‘내 자신이 복되게 살면 나와 인연하는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우주의 존재방식을 깊이 새겨 스스로 복된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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