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를 마치며
상태바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며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9.10.31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를 말한다. 총 길이는 1400km에 이르며, 남한 구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약 680여 km가 된다.

이 길은 산 좀 탔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길이다. 그러나 장시간, 장거리에 이르는 고된 여정과 현실적인 여러 제약으로 인해 대부분 생각에만 머문다.

대간의 등뼈에 올라 조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커다란 욕망이 생기고 이를 뒷받침하는 수개월~수년간의 장기계획이 세워진 후에야 비로소 대장정의 길에 오를수 있다. 일단 대간 길에 오른 사람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뉘는데, 아무리 굳은 마음으로 시작했더라도 넘어도 넘어도 끝이 없는 고산준령의 봉우리를 경험하고 장정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변화무쌍한 혹독한 자연환경과 체력의 한계를 넘어 심지어 극한의 공포가 생겨도 목표를 향해 끝까지 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신기한 것은 걸어온 길이 누적되고 목표가 가까워질수록 은근과 끈기가 살아난다는 점이다.

한번을 가든 완주를 하든 간에 백두대간 길을 걸어보는 경험은 실로 소중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랜턴에 비친 나뭇잎 그림자에 놀라 가슴이 철렁했던 일, 거미줄로 세수하며 거미의 부지런함을 불평하던 일, 멧돼지가 방금 파놓은 길을 따라가며 하루종일 가슴 졸인 일,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되돌아오던 일(속칭 알바), 온종일 내리는 장대비로 몸이 흠뻑 젖어 등산화에 물이 고이던 일, 한겨울 눈보라 때문에 앉아 쉬지도 못하고 서서 밥을 먹던 일, 빨래판처럼 생긴 봉우리를 하루에 열 대 여섯개를 오르내리다 탈진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백두대간에서만 피어나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3계절 내내 관찰할 수 있었고, 한여름 장쾌한 능선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은 뼛속까지 시원했으며 만산홍엽의 봉우리 속에 파묻힌 이른 새벽의 운해는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장관이었다.  지리산 권역을 지날 때는 어머님의 품속처럼 아련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고 남원 운봉의 평화로운 마을에서는 판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덕유산 권역은 아기자기하고 즐거운 시골 모습과 함께 고산의 위용과 절경도 볼 수 있었다. 속리산 권역은 암릉으로 인해 많은 구간에서 밧줄을 타야 했으나 끈기를 가지고 하나씩 둘씩 오르내리면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소백산 태백산 권역을 지나며 많은 역사문화유적을 접할 수 있었고, 신기하고 웅장한 풍력발전기는 오대산 권역을 통과하며 원 없이 보았다. 설악산 권역은 공룡능선과 너덜지대가 비록 힘들긴 했지만 주변에 펼쳐지는 대단한 풍광으로 인해 미시령 진부령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대간길은 고되고 고된 길이다. 어느 한 구간 쉬운 곳이 없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대간에 몸이 있을 때가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이 나타나면 곧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낙담하지 않았고, 내리막에 있을 때는 또 다른 오르막을 준비하며 기뻐하지 않았다. 수많은 봉우리를 넘나들며 어려울 것도 없고 쉬울 것도 없는 무심(無心)의 경지를 경험했고, 어느새 강인해진 체력을 느끼며 ‘자연에서 멀어지면 병과 가까워진다’는 괴테의 말을 되새겼다.

3년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함께 울고 웃었던 (사)한국산악회 충남서부지부의 회원 제위께 지면을 통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특히, 회갑을 맞아 인생의 전환점을 백두대간에서 찾은 몇몇 회원님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대간을 마친 세 쌍의 부부, 틈날 때마다 산행에 참여한 고1짜리 학생의 앞날에도 서광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