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꿈,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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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꿈,행복
  • 이원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9.1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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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으로 피부에 와닿는 바람결이 한결 시원해졌다. 코로나 대재앙에,태풍에,심신이 파김치가 되어 무너져내릴 지경에 다다랄 즈음, 구원의 손길마냥 가을이 왔다. 이제는 코로나19도 무섭지 않고 태풍의 피해도 잘 극복해나갈 것이다. 온 세계가 조금만 참고 한마음이 되어 철벽방역을 한다면 코로나19완장을 찬 저승사자조차 울며 돌아서지 않겠는가? 애브러커대브러(아브라카다브라)!

‘마음먹은대로 된다,는 그리스어는 참으로 맞는말이다. ‘일체유심조, 와 같은 뜻이니, 꿈을 잃거나 잊지만 않는다면 조만간 우리는 그 모든 역경을 지구 밖으로 내던져버리고 우리가 마음먹은대로 다시 일어설수 있을 것이다. 태풍만 해도 그렇다. 앞으로 한 두차례, 눈치도 없이 더 문안을 드리겠다고.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혹독하게 당했던 지난번 같기야 하겠는가. 지나간 태풍이 되돌아올리도 없으니, 지난 번의 체험을 바탕으로 대비에 만전을 기한다면 피해를 입더라도 훨씬 덜 입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웬 말이 많냐고요? 그렇긴 합니다만 힘을 내시라고, 꿈마저 놔버리지는 마십사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꿈 꿀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분들, 일테면 지난 번 태풍으로 모든 것이 거덜나고 몸 하나 밖에 남은게 없는 이들, 난치병이 불치병이 돼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만 사람들 일지라도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 길이다. 

지난 9월 초의 일이다. 중고등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게 됐다. 찬란한 꿈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멋있었다. 동양인으로는 꿈도 꿀수 없던 팝송계의 정상에 올라선 방탄소년단조차도 부러워할 무언가를 지닌듯한 면면들이었다. 

그런데, 돌멩이를 삼켜도 일곱 빛깔 보석으로 빚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들 중에도 꿈이 없는 소년 소녀들이 있었다. 말로만 듣던 사실을 직접 확인 했을 때의 놀람은 말 그대로 큰 충격이었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겠거니 여겨져 형제를 물어보니 꿈이 없다는 두세명의 아이들은 모두 외동들이었다. 결손가정의 학생들인가 궁금했지만 사생활 침해가 될 듯해 더는 묻지 않았다. 내자식들조차 번듯하게 이끌어주지 못하는 처지에 내 자신만이라도 제대로 되돌어보자는 심정으로 집어든 책이 위암 장지연 선생이 쓴 <조선유교연원>이다. 

고려 말부터 조선 500년은 물론 요즘도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교. 위암 장지연(1864~1921)선생은 경북 상주태생으로 1905년 을사조약 때 황성신문의 주필로 ‘이날에 목놓아 통곡한다’ 라는 뜻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써서 일세에 이름을 떨친 언론이요 독립투사였다. [조선유교연원] 3권1책으로 돼있는데, 제1권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아들 설총, 최충, 안향, 백이정, 이제현, 정몽주 등등의 거유와 화담 서경덕의 제자 박지화까지의 각 인물의 생애와 풍모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또한 1권에는 퇴계 이황과 제자 고봉 기대승 간에 사단칠정에 대한 견해차를 담은 글, 우계 성혼이 율곡 이이에게 사단칠정과 이기(理氣)에 대해 묻고 율곡이 답한글이 실려있다.

제2권은 유학의 새로운 갈래라고 할 수 있는 양명학의 개창자 왕양명의 저술[전습록]에 대한 해설의 글부터 시작해 초암 김헌기까지의 삶을 약술했다. 권3권은 관서지방의 유학계를 정리한 것으로 돈암 선우현에서 가실 주명상까지를 다뤘다. 

마지막은 총론으로<후한서>의 저자 범엽의 글을 인용하여 기자가 중국의 고대 왕국 은 나라가 멸망하고 그 제후국이었던 주나라가 들어서자 동쪽(고)조선으로 망명하여 8조금법을 펼치며 조선의 풍속을 교화시켰다는 기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이어서 조선유학은 최초로 이땅에 유학을 도입한 고려의 안향, 백이정, 이제현 등의 공헌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조종은 포은 정몽주라는 것. 그의 학풍은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 그의 아들 점필재 김종직, 그의 제자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회재 이언직, 퇴계 이황, 그 제자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 등으로 이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선조 8년에 유학자 들이 동서로 분당되었을 때 동인이 된다. 기호학파는 율곡 이이, 우계 성혼을 필두로 광해를 몰아낸 인조반정의 주인공들과 그 문인들이 주축이다. 동인과 대립한 서인들인 셈인데 사계 김장생, 그 아들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김상헌의 후손 김창협, 김창흡, 남당 한원진, 이간 등이 학맥을 이어갔다. 송도(개성)중심으로 도가사상적인 면도 흡수한 화담 서경덕의 후학들인 초당 허협 ,토정 이지함, 서기 등이 맥을 이었다.

조선의 유교는 조선 중기 4대 사화를 지나면서부터 현실정치와 엮이어 복잡한 학맥에 따라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빠져들며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 등으로 타락하면서 결국은 나라전체를 사지로 몰아 넣기에 이른다. 아! 학문이 그 궤도를 벗어나면 못배운 자들의 단점보다도 훨씬 더 치명적인 것 이다.

 

이원기 <청운대학교 교수·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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