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복 할머니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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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복 할머니 〈화분〉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0.12.0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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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 〈19〉

이연복 할머니는 첫날 손녀딸과 함께 오셨습니다. ‘손녀가 계속 오면 참 좋겠다. 아이도 같이 그림을 그리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다음날 손녀는 오지 않았습니다. 인천 집으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손녀가 집으로 가는 날 하루 안 나오신 이연복 할머니는 셋째 날에 오셔서 ‘소낭구’를 그리셨습니다. 회색으로 새 두 마리를 그리시고 소나무 옆에 꽃나무도 한 그루 그리셨습니다. 빨간 꽃잎 가운데에 노랑 꽃술이 있는 것이 동백꽃 같아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동백꽃 그리신 거죠?’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대신 옆에 계시던 김기분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머리가 을매나 좋다구! 씨앗을 참 잘 챙겼어!’ 하셨습니다. ‘씨앗을요?’ 씨앗 소리가 반가워 다시 여쭈었습니다. 내년에 심을 씨앗을 봉지에 따로 따로 담아서 이름을 써 놓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씨앗을 빌리러 가면 거기서 꺼내 주더라 하셨습니다. 

‘굶어 죽어도 씨앗 오쟁이는 비우지 않는댜!’ 하고 듣기만 하던 원기순 할머니가 거들었습니다. 씨앗마저 먹어 없애면 미래가 없다는 말씀 같았습니다.  ‘씨앗 오쟁이는 잘 때도 베고 잔다잖여!’ 김은순 할머니가 팔을 머리에 대며 자는 시늉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씨앗을 소중하게 여겼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농경시대를 사신 어르신들이 경험에서 나온 말씀을 한 마디씩 하셨습니다.  

이연복 할머니는 그 다음 날에도 시원하게 그림을 그리지는 않으셨습니다. 흥미를 잃지나 않으실지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다음날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림을 두 장이나 그려 오셨는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었습니다. 한 장은 화분을 그린 그림이었고 또 한 장은 해바라기를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두 장 모두 선이 시원하고 채색이 조밀하면서 생생하였습니다. 

특히 매력적인 것은 화분 아래에 칠한 노랑이었습니다. 노랑바탕에 초록 점을 찍어 놓으셨는데 모양은 그림자이지만 빛의 색이었습니다. 반전이었습니다. 방 안에 있던 모든 분들이 일어나 감탄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들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고 한 이은정, 이경옥 두 분에게 할머니들 그림의 비밀을 단박에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엉뚱함이었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엉뚱하고  신선하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수필가, 미술인문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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