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선 할머니 〈감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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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선 할머니 〈감염병〉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0.12.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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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22

추석이 지나면서 날씨가 부쩍 차가워졌습니다. 그래도 어르신들은 일찍 나와 계십니다. 다행스럽게 바람이 그다지 차갑지는 않습니다. 정자 깊숙이 햇빛도 들어옵니다. 지난주보다는 옷을 좀 더 두꺼운 것으로 갈아입고 계셨습니다. 

마스크를 새것으로 나눠 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은 마스크를 갈이 쓰시는 것도 수월하지는 않으신 것 같습니다. ‘추석에 자녀분들 다녀가셨어요?’하고 여쭈니 ‘내가 갔다 왔지’ 하고 정창선 어르신이 말씀하십니다. 아드님이 차를 가지고 오셔서 모시고 갔다가 모셔다 드렸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차례를 지내야 하니 어르신이 가셨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섯 남매 중 둘만 왔다 갔어!’ 하고 정옥희 어르신이 말씀하십니다. 추석 전부터 자녀분들이 올 것을 알고 준비하시는 손이 바쁘셨습니다. 정순선, 정화순 어르신 자녀분들은 한 분씩만 다녀가셨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걱정되는 마음은 감염병도 막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가 예전에도 있었나요? 명절도 못 쇠게 돌림병이 돌던 때가!’ 하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염병이라고 했지. 염병하다 죽는다고 하잖남?’ 염병이 돌아 병에 걸리면 마을에서 내쫒아 병막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면 단위에 한 군데씩은 병막이 있었어. 병에 걸리면 거기로 보냈지.’ 거기서도 살 사람은 살아 돌아오더라고 하셨습니다. 약도 없던 시절이니 염병이 마을로 들어올까 두려워 죽창을 들고 마을을 지키는 게 일이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빨리 지나가야지 답답해 죽겄어!’ 정옥희 어르신이 말씀하십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동갑내끼리 점심을 먹으러 마을 밖으로 나가고는 했는데 감염병 때문에 그럴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마을회관이 폐쇄돼 어르신들이 모일 곳이 없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하십니다. 마을회관이 열려 있을 때는 마을회관에서 장기도 두고 TV도 시청하셨습니다. 할머니들이 음식을 만들어 할아버지들은 큰방에서, 할머니들은 부엌방에 점심을 드시고 불을 뜨끈하게 때고 누워서 담소도 나누셨습니다. 한적하고 깊숙한 농촌에 사시는 어르신들의 아주 사소한 즐거움까지 앗아간 감염병이 밉기만 합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수필가, 미술인문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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