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선 할머니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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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선 할머니 〈연꽃〉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1.01.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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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 〈26〉

그림 그리기 활동이 끝나고 나서 어르신들을 뵈러 마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정순선 할머니는 곧고 긴 장대를 지팡이 삼아 짚고 걸어 나오고 계셨습니다. 멀리서 보니 마치 싸우러 나가는 장수 같으셨습니다. 웃음이 새어 나올 만큼 걸어 나오시는 보무가 당당하셨습니다. 평소에는 지팡이를 짚지 않으시는데 지팡이를 짚고 나오셔서 여쭈어 보니 ‘어지러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연세가 많으시니 편치 않다는 말씀만으로도 긴장이 됐습니다.  

정순선 할머니는 동네에서 제일 연세가 많으십니다. 그럼에도 그림을 제일  많이 그리십니다. 누구보다도 건강하시고 정신도 맑으셔서 한 점 흐트러짐이 없으십니다. 아마도 비결은 깊은 정신활동과 종교 생활인 것 같습니다. 정순선 할머니는 오랫동안 절에 다니셨다고 하십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절에 다니시지만 정순선 할머니는 거의 모든 그림에 연꽃을 그리실 만큼 불심이 깊으십니다. 의도적으로 그린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연꽃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석가탄신일에 절 마당에 가득한 꽃 등불 같은 아름다운 색채와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형태로 연꽃의 자태를 그리십니다. 

위 그림도 연꽃을 그린 것입니다. 크고 작은 연꽃과 연잎들이 마치 화음을 맞추듯 서 있습니다. 칸을 나누어 아래에는 꽃잎이 넉 장인 꽃송이들이 그려져 있고 예쁜 색채로 바탕을 메워 나가고 있습니다. 색을 칠하다 말아서 생긴 흰 부분이 오히려 그림 전체를 산뜻하게 합니다. 

얼마 전 아침 방송 TV 화면에 정순선 할머니가 비치셨습니다. 주섬주섬 그림을 그린 스케치북을 꺼내놓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의연하였습니다. 배경에 놓여 있는 할머니의 침대와 옷장, 세간들도 정갈해 보였습니다. 역시! 정순선 할머니! 하는 감탄이 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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