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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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보고파)”
  •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
  • 승인 2021.02.1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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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8월의 어느 날 세차게 소낙비가 내리던 오후. 군 입대를 앞둔 친구와 가곡집을 비롯해 가요집과 찬송가까지 펼쳐 놓고 아는 노래를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불렀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 많은 노래 중에 설 명절에는 이은상 작사 김동진 작곡의 ‘가고파’가 마음 깊이에서 메아리치는 듯하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고향은 있지만 요즈음은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산과 들에 대한 예전 같은 향수를 느낄 수가 없지만 인간은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흙에서 뛰어놀았고 싱그러운 흙냄새 따라 고향을 찾게 된다. 그러나 올 설 명절은 코로나에 대한 공포로 고향방문을 자제해야 되고 그것도 인원의 제한으로 온 가족이 오순도순 만남의 기회까지 박탈당하는 허탈감에서 고향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다. 과거에는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고 했는데 지금은 뭉치면 코로나에 위험하고 헤쳐야 안전하다는 집합이 아닌 분산의 세태가 됐다. 설날 아침이면 대가족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떼를 지어 세배를 다니던 행렬이 아득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줄이야! 가고파 가사에서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에서 고향에 대한 정감이 한 단어 한 소절마다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그러나 지금의 고향친구들 중에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어떤 친구는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해 옛날처럼 뛰어 놀 수도 없음이 못내 아쉽다. 어린 시절 죽마고우들이 모이면 딱지치기, 팽이치기, 구슬치기, 땅뺏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등… 여러 가지 놀이에 해지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놀다가 딱지치기의 손익계산으로 희비가 엇갈렸던 모습이 떠오르며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입가에 미소가 진다. 인간은 추억을 되새기며 희망을 품고 사는 존재로 과거와 미래의 시간 속에서 현재를 엮어가는 배우처럼 각자 맡은 배역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인데 현재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예전보다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나훈아의 트로트인 ‘테스형’의 가사처럼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말 속에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청년들에게 너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 알라는 산파술로 가르치며 삶의 주체는 나 자신임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출산에서 산모가 아기를 낳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갓난아기 스스로가 출산을 하는 것이고 산모는 그 아기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말을 물가로 끌고 가지만 물은 말이 직접 마셔야 하듯이 매사에서 내 스스로 주체가 되어 단독자로 직접 경험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경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며 우리가 가고파하는 곳은 육신이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이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안주할 그곳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어야 한다. 어쩌면 고향에서 잠시 만나서 함께 어울려 재미있게 놀던 친구들도 언젠가는 서로 헤어져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을 어찌할 수 없으며 우리의 본향인 그 곳을 향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밀려오는 시련과 역경은 바로 새로운 고향을 가기 위해 주어지는 또 하나의 과정이 과제가 된다.

지난 한 해 동안 코로나의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고 많은 상실감에서 좌절하지 않고 오늘 다시 여기까지 올 수 있음으로 더 큰 성장과 저력을 키워왔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이 온다는 신호처럼 머지않아 가고픈 고향, 보고픈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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