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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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되었을까?
  • 김경미 기자
  • 승인 2021.03.04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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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되었을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이웃과 자연이 더불어 상생해야 할 시대, 이타적인 것보다는 이기적인 모습이 짙은 오늘, 이 시대의 삶을 어둡게 하는 그늘이다. 지난해부터 우리들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시대상황 속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따로따로’를 외치고 한 발짝 ‘멀리’를 요구받는 시대, 하지만 힘들어도 ‘함께’ 또는 ‘같이’ 살아가야 하는 오늘이라는 숙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너무 힘들어 쓰러질 때 누군가의 조그마한 희생이 누군가에는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것이 ‘서로’ 또는 ‘같이’라는 상생의 한부분이 아닐까. 코로나19 바이러스시대, 서로가 신뢰하고 의지하며, 청결하면서도 간격을 둔 채 소박하게, 서로가 묻어나는 사랑과 겸손으로 함께 같이 살아가야 하는 시대다. 나만 살겠다고 이웃을 시비의 도구로 삼기보다는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는, 그래서 우리는 하나’라는 삶의 진실을 서로가 얼싸안고 살아갔으면 참 좋겠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주거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사는 삶을 희망한다. 요즘에는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토록 간절한 욕망의 대상인 아파트지만 사람들은 정작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듯하다. 정작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남에게 간섭받지 않는 독립된 생활을 원하지만 층간소음, 주차 문제 등으로 이웃과 갈등을 겪으면서 그러한 바람은 깨지기 일쑤다. 한편으로는 아파트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누리고, 존중받고자 하는 욕망 또한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는다고 느껴지면 항의하고, 관리소에 불만 섞인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고충을 이웃들이 공감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처럼 아파트 거주자들은 남의 간섭은 싫지만 서로가 도움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아파트 문화와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욕망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아파트는 주민들이 서로가 따로따로, 또는 같이, 함께 사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다.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무언가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라는 한자의 뜻이 그렇듯이 사람(人)은 사이(間)적 존재다. 사이는 관계를 뜻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이웃의 일은 곧 우리 집의 일이었다. 옆집에 모내기나 큰 일이 생기면 마을 사람 전체가 나서 도왔고, 반대로 우리 집에 일이 있으면 온 마을이 나서서 준비와 마무리를 함께했다. 마을 구성원들이 서로 도와가며 사는 두레의 참 정신이었다. 그래서 ‘나 살고 너 죽자’(이기주의)나 ‘나 죽고 너 살자’(이타주의)거나, ‘나 죽고 너 죽자’(물귀신)가 아닌 ‘나도 살고 너도 살자’(상호주의)만이 코로나19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또한 자신은 물론 지역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상생과 협력, 공존의 방법이 아닐까. 

 

김경미 <홍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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