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윤여정의 유머와 가족의 초상(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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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윤여정의 유머와 가족의 초상(肖像)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5.0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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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음으로써, 아니 직설화법을 통한 ‘시상식의 여왕’으로 등극함으로써, 영화 ‘미나리’는 더욱 조명 받고 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위트와 유머, 여유가 넘친다. 그러나 그 유머에는 뼈있는 메시지와 시대정신도 담겨있어 박장대소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만은 하지 않는다. 70대 노배우의 삶의 역정이, 삶을 바라보는 촌철살인의 눈빛이 화법에 녹아있다. 또한 쉽고 담백한 그녀의 영어표현은 울림의 반향(反響)도 크다. ‘미나리’로 상복이 터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For me, an award means getting next work.(나에게 상이란 다음 일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말로 생계형 배우였음을 대신한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무척 고상한 체 하는 사람들(snobbish people)에게 인정을 받아서 특히 의미가 있다”는 그녀의 수상소감은 문화적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영국인들에게 ‘한방의 어퍼컷’을 날린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NYT)는 보도하고 있다.

윤여정의 직설적 화법이 관심을 끄는 것 못지않게 영화 ‘미나리’는 우리의 전통적 가족, 가족주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미나리’에서는 제이콥 가족의 3대가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늙으면 요양원에 가야하고, 현실이 녹록치 않으니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현저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역할이 미미(微微)할 때 생존하기 위해 가족을 중심으로 뭉쳐야만 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먹고 살기위해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향해야만했다. ‘미나리’의 제이콥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들이 먼 이국땅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은 미국인들에게도 그들의 선조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 동부 플리머스에 도착해 어렵게 살아가야 했던 시절에 투영되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제이콥 가족의 역경(逆境)은 타자의 모습이 아니다.

제이콥은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뭔가를 해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는 가부장적이기는 하나 강압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그는 병아리감별사로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아칸소주로 이주한다. 가족과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그곳에 정착하지만 미래는 밝거나 확실하지 않다. 제이콥 가족들이 미국에서 가난의 상징인 이동식 주택에서 살아갈 때 한국에서 모니카의 친정 어머니인 순자(윤여정 분)가 등장한다. 코믹한 욕을 하면서 화투를 가르친다거나, 입에 넣었던 밤을 준다거나, ‘페니스가 브로큰’ 됐다고 한약을 다려준다거나, 레슬링을 보다가 데이빗의 오줌을 마시는 별스러워 보이면서 코믹한 할머니다. 이런 할머니에게 외손자 데이빗은 한국냄새가 난다며 할머니에게 다가가지 않으려한다. 그러나 차츰 둘은 가까워지고 그녀는 가족 갈등의 해결사 역할도 한다. 그러나 중풍에 걸린 그녀의 실수로 농장 창고에는 불이 붙고, 제이콥 가족은 모든 것을 잃는다.

그즈음, 제이콥과 부인 모니카는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위기를 맞지만 과거를 삭제해버린 화재 앞에 다시 힘을 합한다. 화재이기는 하지만 순자(할머니)가 화합의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카메라는 갑자기 제이콥이 데이빗의 손을 잡으며 할머니가 심어 놓은 미나리꽝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엔딩을 알린다. 미나리는 물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고, 다시 심지 않아도 그 이듬해 그곳에서 다시 자라난다. 게다가 다양한 음식에도 넣어 먹고 몸에도 좋으니 순자의 말마따나 원더풀이다. 죽었다가도 이듬해 살아나는 미나리는 한편 재생을 의미한다. 정 감독은 할머니가 심어 놓은 미나리로 이 가족의 희망을 환치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 ‘미나리’는 정 감독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 즉, 두려운 토네이도, 심장병, 농장의 화재, 할머니와의 추억, 종교적 광신자의 도움, 아빠와 어머니의 싸움, 어린 데이빗의 시선(point of view) 등이 모두 소환되어 함께 부르는 합창이다. 정 감독은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삶의 보편적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영화 ‘미나리’를 보면서 한국의 전통적 가족, 가족주의가 변모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 4월 여성가족부는 2025년까지 ‘아빠 성 우선폐기’, 혼인, 혈연중심의 ‘가족’개념 확대, 비혼 동거인도 ‘배우자로 인정’하는 ‘제4차 건강가족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출생인구가 급감하고 가족을 구성하는 최초의 관문인 결혼을 거부하거나 늦추려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의 한국 사회가 전통적 가족, 가족주의로 회귀할 수는 없지만, 삶이 각박해지고 결혼에 회의를 품는 이 시기에 과거와 현재의 가족을 함께 바라보는 ‘복합적 성찰’이 우리 사회에 요구되고 있다.

가족은 의무의 굴레 보다는 자아실현을 위한 공동체이어야 한다.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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