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준 선물, 건강보험 ‘상병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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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준 선물, 건강보험 ‘상병수당’
  • 이성복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6.1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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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적극적인 대응과 지원을 통해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다수 외신이 한국 방역의 성공요소로 언급할 정도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으나 중요한 결함으로 부각된 것이 상병수당이다. 그 동안 우리의 건강 정책은 ‘소득 보장’보다는 ‘의료 보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의료 접근성을 높여 보장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졌으며, 소득 보장은 건강보험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써 그 인식이 크게 확산되지 못했다. 필자도 30년 넘게 건강보험제도의 현장에서 근무해 왔지만 상병수당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게 된 것은 연구부서에서 ‘정액형 개인의료보험 연구용역’을 지원했던 2013년경으로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상병수당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규정된 부가급여로써 그 실시 여부가 보험자의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임의급여 항목이다. 이는 질병·부상 등으로 노동력의 상실이나 감소로 인한 수입의 상실이나 감소에 대한 보전을 위해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현금급여에 속한다. 지난 2013년 국회에서 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서는 대통령령으로 상병수당 지급을 부가급여로 실시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대통령령에 상병수당 지급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지 않았으며, 그 동안 정부에서도 치료 중심의 급여재정이 시급했기 때문에 예산 부담을 이유로 제도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사업장 근로자가 업무상 질병을 얻었을 때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이 치료비와 임금 손실의 일부를 지원하지만 일과 관련없는 질병에 걸렸을 때는 별도의 임금 보전수단이 없다. 또한 실업자,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 근로 취약계층과 자영업자는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에서도 제외돼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 동안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당국이 ‘자가격리 14일’, ‘아프면 쉬기’ 등의 방역 지침을 시행했지만, 격리 중이거나 확진 상태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근로자들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소득 보전없이는 그 지침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상병수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과거 어느 때 보다 높다. 

상병수당은 1883년 독일에서 최초로 도입됐고 대부분의 복지 선진국가들에선 100년 넘게 지속된 제도이다. 독일은 질병이 발생해 노동을 할 수 없는 근로자에게 임금의 75%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피보험자가 노동을 할 수 없는 경우 최고 1년 6개월 한도 내에서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상병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그 동안 정액형 민영의료보험에서 입원일당형·진단비형·수술비형 등의 형태로 상품이 개발돼 왔다. 그러나 정액형 민영보험에서는 직업이나 소득과 관계없이 가입금액이 결정·지급되므로 보험업법에서 정하고 있는 비례보상의 원칙에도 맞지않고 가입자가 해당 질환이 발생했을 때 지급된 의료비보다 많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어 입원기간 연장 등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4대 중증질환과 3대 비급여의 보장성 강화에 따라 정액형 의료보험의 필요성은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됐고, 기존 가입자는 초과 피보험이익(보험금 수입-실제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상병수당 도입논의는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지난 200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출범할 때부터 줄곧 나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시행되지 못했던 것은 ‘재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건강보험연구원은 상병수당을 도입하려면 8055억 원~1조 7718억 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 재원을 조세와 사회보험 중 어디에서 마련해야 할지 지금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한 상태이다. 상병수당을 도입해 지급하기 위해서는 국고 지원을 대폭 늘리거나 건강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2022년 보장률 70%를 목표로 매년 5000억 원 이상의 국고 증액지원과 더불어 과거 10년간의 보험료 평균인상율 3.2% 수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보험료 인상은 국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병수당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일부 주를 제외한 모든 OECD 국가들에서는 이미 운영해 오고 있다. 지난 해 7월 정부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서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2021년)과 시범사업(2022년) 추진을 발표했고 현재 연구용역이 진행되고 있으나, 재원조성의 이해관계, 비임금근로자의 낮은 소득파악에 대한 불신 등으로 고려할 사항이 많은 과제이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여러 제도를 선진 외국에서 도입해 단기간에 우수한 제도로 발전시킨 경험이 있다. 지금 상병수당 도입 환경도 다르지 않으며, 코로나19의 소중한 선물인 상병수당이 미래에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입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겐 해외의 소중한 선행 사례가 있으며, 향후 대상자 범위, 재원 및 운영방식, 보장 수준과 사후관리 등 제도 도입 시 필요한 사항을 더욱 구체화하고 공론화하여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를 만드는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성복 <국민건강보험공단 홍성지사장·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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