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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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자가 되라’
  • 송경섭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8.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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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요양원을 운영하는 원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25년 동안 요양원을 운영해오면서 단 하루도 낮잠을 자보지 못했단다. 어느 분이 돈이 있다고 요양원을 사람을 사서 해보겠다는 걸 말렸단다. 먼저 단 1년이라도 아니 단 6개월만이라도 요양원에 가서 직접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해보고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단다.

수도권 도시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가 있다. 요즈음 코로나로 사람 만나기도 어렵고 교회 일이 많이 줄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어르신들이 모이는 경로당과 공원 주위를 청소하고 있단다. 그러면 어르신들도 나서서 함께 청소를 거들어 주신단다. 

2000년 전 로마제국은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전쟁 포로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삼았다. 노예들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많이 기여했지만 그저 소나 말처럼 대우받았다. 최악의 대우를 받았다. 권력자들은 노예들을 거느렸고 노예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주인을 섬겨야 했다. 아무도 노예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쓰인 신약성경은 “높아지려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지도자는 섬기는 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역사가 발전하여 민주주의 체제 이후로 국민이 자기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게 되면서 지도자는 국민을 섬기는 자이기를 바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아직도 섬기는 훈련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현실이 안타깝다.

장관이나 목사를 Minister라고 부른다. 사역자라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는 노예 또는 종을 가리키는 단어다. 공무원을 일컫는 공복(public servant)도 종을 가리키는 단어다. 섬기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공직자나 성직자는 섬기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섬기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지위와 권한을 그들에게 맡긴 것은 섬기라고 주어진 것이다.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섬기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관행들과 관습들이 있다. 먼저는 우월주의이다. 실력을 갖추는 것은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자신의 학력이나 출신으로 타인을 차별하거나 지위를 독점하려는 사람은 섬기는 자가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군림하려 한다.

자기 이익을 위해 공직에 나가겠다는 사람은 처음부터 배제돼야 한다. 이들이 국민을 섬기는 자가 될 리 없다. 자기 배를 채우는 사람이다. 공동체를 위하는 지도자는 힘없는 자의 편에 서는 사람이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타락이다.

우리 사회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파당주의이다. 자기 진영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은 반쪽짜리 지도자다. 나머지 반쪽에게는 군림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공동체는 불행해진다. 반대편을 격려하고 존중하고 칭찬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언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더욱 막말과 조롱, 욕설의 정치는 지양해야 한다. 

이런 비정상이 상식이 돼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반쪽짜리 지도자는 용납돼서는 안 된다. 통합의 정치는 필수이지 선택이 아니다. 

정치도 사랑으로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정치는 정상이 아니다. 적대적 논쟁을 그치고 생산적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싸우는 정치, 죽이는 정치를 끝내야 한다. 선의든 악의든 상대에 대한 공격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끝없이 대화와 존중으로 통합을 이뤄야 한다. 국민이 주인이라면 그래야 옳다.

진짜 섬기는 종이 된다는 뜻이 무얼까? 공동체와 그 안의 구성원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종 취급받았을 때, 기분 나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종 된 자세를 갖춘 사람이다. 이 사람은 공동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작은 공동체를 섬기는 봉사부터 해보자. 학생은 학교에서 자기 학급을 섬겨보라.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섬겨보는 것은 어떨까? 직장 안에서도 섬김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가 필요한 기관에 가서 봉사하는 것은 어떨까?

이기심을 넘어 공동체를 진심으로 섬기는 자가 됐을 때, 그 때에 공직이나 성직에 나가는 것이 맞다. 우리를 섬길 자를 선택할 것인가, 우리 위에 군림할 자를 생각 없이 고를 것인가? 선거는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선택이 잘못되면 국민이 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공직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최근의 국제정세를 통해 아프게 공감하고 있다. 역사에 후회 없는 선택이 되도록 공직 후보자나 우리 국민이나 모두 각성하고 다가오는 선거에 임해야 하겠다.

송경섭 <결성감리교회 목사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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