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온 은둔형(蘟遁型) 외톨이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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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은둔형(蘟遁型) 외톨이의 용기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11.11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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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어떤 형태로든 상호작용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가족과의 접촉도 피하면서 자신의 테두리에 갇혀서 혼자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A씨는 40대 초반의 무직자이다.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지 8년 정도 됐다. 이를 오랫동안 지켜보던 70세 어머니가 H기관 담당자에게 힘겨움을 호소했고, 우리 기관으로 상담이 의뢰됐다. 본 기관에서는 전문상담사를 가정으로 방문케 해 상담을 진행하도록 했다. A씨의 동의로 가정방문상담이 이뤄졌지만 A씨는 상담사가 도착하면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담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가정을 방문했고 어머니를 상담하다보니 A씨가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오는 날이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A씨는 상담을 거부했고, A씨의 강력한 태도에 어머니도 상담을 종결하기 원했다. 합의 후 종결하기로 결정한 날, 극적으로 A씨는 다시 상담을 요청했고, 이후부터 상담 시 합의한 과제는 매우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현재 A씨는 아침에 일어나서 씻은 후 옷도 갈아 입고, 어머니와 함께 산책과 식사를 하며,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있다. 또한 구직자를 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고용촉진지원금으로 학원에 등록한 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생후 8개월 때 A씨는 부모님의 갈등으로 보육원에 잠시 맡겨진 적이 있었다. 남동생과 잦은 싸움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로부터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 폭력을 경험하기도 했다. 내성적이었지만 공부를 잘했고, 몇 명의 친구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를 집에 데려오자 아버지는 친구의 성적을 물어보셨다. 친구가 돌아간 후 아버지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와 놀지 말라’고 꾸중하셨다. 이후 A씨는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었다. 또한 부모님의 잦은 싸움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고, 웃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던 중 어머니가 선글라스를 쓰고 학교에 찾아오셨다. 아버지와 이혼하겠다는 것이다. 그 후 성적은 계속해서 떨어졌고, A씨를 안타까워하던 담임의 관심과 배려로 겨우 U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 후 한 학기를 마친 후 군 입대를 지원했고, 전역 후 복학을 하지 않은 채 취직을 강행했다. 월급을 받으면 매일 담배와 술로 밤을 지내다보니 폐질환으로 직장을 사직하게 됐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란 단어를 떠올리기도 싫고, 아버지란 존재를 잊고 싶을 정도로 몸서리친다.

2005년 일본의 정신과의사 사이토다마키는 ‘황금가지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분석’을 통해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는 세상과 담을 쌓고 병적으로 은둔하는 외톨이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히키코모리를 폐쇄 은둔족(閉鎖遯隱族)이라는 말로 사용했으나, 보통 은둔형 외톨이(蘟遁型) 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 외에도 ‘방콕족(방안에 콕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 귀차니즘(모든 일에 다 귀찮아 함)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히키코모리와 방콕족은 스스로 사회와 담을 쌓고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생활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사람에 따라서 3~4년, 심하게는 10년 이상을 방 안에 갇혀 지내는 경우도 있다. 원인으로는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트라우마(trauma)나 가족관계가 역기능일 때, 학력지상주의에 의한 스트레스로 경쟁사회에서 도태되면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단절을 꾀하는 경우,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에 따른 네트워크 구축 상황, 개인의 정신장애와 성격적 요인과 미숙한 대인관계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골든버그와 골든버그(Goldenberg, I., & Goldenberg, H., 2012)는 부부관계에서 감정적 갈등과 불안을 자녀에게 투사함으로써 자녀를 삼각관계에 빠지게 하며,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자녀는 속죄양이 된다고 했다. 곧 은둔형으로 살아온 A씨의 문제는 개인의 성격적 요인 탓만이 아닌, 역기능적인 가족체계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A씨와 가장 가깝게 관계를 맺은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A씨의 은둔생활을 보면서 A씨보다 더 큰 죄책감과 좌절감을 경험했다. 아들의 은둔 정도가 장기화되면서 어머니는 탈진상태였으며, 무력감과 자책감, 분노 등 다양한 심리적 고통을 경험했다. 집안에서 A씨는 장남이기에 A씨의 은둔문제에 대해 친인척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이 아들을 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아들이 언젠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놓아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A씨는 어머니가 자신을 믿어주고, 기다려줬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급속화된 사회변화에 따라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계 최강의 IT 선진국답게 각 가정에 널리 보급돼 있는 인터넷을 통해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바깥 세상의 소식을 접할 수 있고, 온라인상에서 나름대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디지털 대륙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아를 긍정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의 균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성경에는 외톨이를 돕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는데, 하나는 사람들과 연합해 돕는 일이고, 또 하나는 친구가 되어 서로 돕는 것이라고 했다(전도서 4:9-10). 이 상담 사례를 통해 나타난 효과는 H기관과 본 기관, 그리고 전문상담사가 연합해 A씨를 지원하고, 전문상담사가 A씨에게 좋은 대상이 되어 인식 변화를 갖게 하고 변화 동기를 촉진케 하는 역할을 잘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랫동안 어머니가 좋은 친구가 되어 지지와 격려를 통해 도와준 것이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A씨는 은둔형 외톨이였지만 현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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