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부터 시작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내 몸을 아끼고 생명을 잇는 특별한 방법, 헌혈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만든 13년간 생명잇기활동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지난 2일, 홍성여자고등학교 김한정수 교사는 300번째 헌혈을 마쳤다. 그러나 그가 진짜로 이어가고 있는, ‘숫자보다 더 큰 일’은 따로 있다. 바로 헌혈을 중심으로 학생들과 함께 ‘생명 잇기’를 실천하는 ‘사제동행 봉사모임 헌혈자원봉사단’이다. 매월 2회, 토요일 오전이면 ‘아산 헌혈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오른다. 학생들은 헌혈을 실천하며 생명을 나누고 공동체의 책임을 배우면서 자신을 돌보는 법까지 익힌다.
이 봉사단은 2012년, 김 교사가 홍성여고 재직 중 몇몇 학생과 헌혈을 다니다가 “공식적인 봉사 모임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13년이 지난 지금, 190여 명의 학생들이 헌혈자원봉사단을 거쳐 갔고, 일부는 간호사, 임상병리사, 대한적십자사 직원으로 성장해 생명 나눔을 삶으로 실천하고 있다.
현재는 17명의 학생이 활동 중이며, 이 중 13명이 정기적으로 헌혈에 참여하고 있다. 김한정수 교사는 헌혈 300회 달성의 원동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300회 헌혈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 헌혈자원봉사단 학생 대표로 활동 중인 강신은(홍성여고 3) 학생은 지금까지 여섯 차례 헌혈에 참여했다. 그는 헌혈 이후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전에는 건강을 의식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헌혈을 시작한 이후로는 식사도 거르지 않게 되고, 운동도 꾸준히 하게 됐어요. 좋은 피를 주려면 제가 먼저 건강해야 하잖아요.”
강신은 학생은 헌혈을 한 뒤에 어지럼증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몸을 더 잘 챙기게 되는 계기”라고 말했다. 그에게 헌혈은 ‘나를 돌보는 방식이자 뿌듯함을 느끼는 경험’이다. 이어 강신은 학생 대표는 “제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건강하잖아요. 그러니 한 번쯤 헌혈을 도전해 보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김한정수 교사의 헌혈 실천은 가족과의 약속에서 비롯됐다. 그는 1995년 어머니와 함께 조혈모세포 및 사후 장기·시신 기증을 등록했고,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안구와 장기 일부가 기증됐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지금도 2주에 한 번씩 헌혈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매년 20매가량의 헌혈증도 백혈병 환우를 위해 기부하고 있어요.”
그는 개인의 실천을 넘어 생명 나눔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일’로 확장시켰다. 그러나 그 길에는 수십 개의 돌부리가 박혀있었다. 2012년부터 지금껏, 늘 학교와 학부모의 우려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통솔해 아산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부담,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걱정, 그리고 ‘헌혈을 꺼리는 사회적 인식’은 매월 두 차례 아산으로 이동할 때마다, 매년 헌혈자원봉사단원들을 새로이 모집할 때마다 겪어야 할 현실적 어려움이었다.
“요즘은 한 가정에 아이가 하나인 경우도 많잖아요.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이가 소중할 수밖에 없죠. 시대가 바뀌면서 아무래도 좀 더 어려움이 따르게 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교사는 ‘안전’이라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13년간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봉사단을 운영해 왔다. 그는 말한다.
“헌혈과 이동은 모두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단 한 명이라도 헌혈이 불편하거나, 위험하게 느끼는 일이 없도록 늘 주의하고 있어요.”
헌혈자원봉사단의 단원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생명잇기운동의 취지’라는 문장을 암기해야 한다. 이는 단순 암기가 아닌, 청소년 자살 예방과 생명존중 교육으로도 이어진다.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고, 사후 장기 조직 기증 서약을 하면 내 몸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주기로 약속한 소중한 몸이 되기 때문에 ‘내 몸’을 조금 더 아끼게 되고 결국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생명잇기운동의 취지’를 읊은 강신은 학생 대표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헌혈하면서 생명을 생각하게 됐어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할 수 있는 피를 나눈다는 게, 저 자신을 더 소중하게 느끼게 만들었어요.”
김한정수 교사는 앞으로 남은 2년 반가량의 교직 생활 동안 이 봉사단을 정성껏 이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정년 후에도 가능한 한 오랫동안, 만 69세까지 헌혈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끝으로 그는 현재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도 아쉬움을 전했다.
“충남 서부권엔 헌혈의 집이 없습니다. 내포신도시는 충남도청과 도교육청이 있는 행정중심도시인데도 불구하고요. 유동 인구도 많고, 근처엔 9개 시군에서 100만 명이 살아가는데도요.”
헌혈은 한순간의 용기가 아니라 오래된 약속이고 매번의 선택이다. 홍성여고 헌혈자원봉사단은 ‘누군가의 생명을 잇는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 누군가는 이 활동을 숫자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더 오래 남는 건 함께했던 마음과 성장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