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는 민주 정치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 선거 ‘후보 단일화’ 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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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는 민주 정치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 선거 ‘후보 단일화’ 역사는?
  • 한기원 기자
  • 승인 2022.03.0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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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선거 ‘후보 단일화’ 역사는?
승리 거머쥐기 위한 임시방편·수단일뿐

이번 대선뿐만이 아니라 대선 다자구도에서 후보 단일화는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중대한 변수로 작용했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후보 단일화 문제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 치러진 제13대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의 민주진영의 후보 단일화 실패를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이로 인해 1979년 12·12 군사쿠데타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노태우의 당선이 가능했다는 평가와 분석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후보 단일화 성공사례는 1997년 치러진 제15대 대선이다. 제15대 대선은 신한국당 경선 2위를 한 이인제 후보가 국민신당을 만들어 독자 출마했다. 이에 충청지역 후보가 3명(김종필·이회창·이인제)이나 됐다. 초반 지지율 1위로 당선이 유력하다고 평가받던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독자 출마한 이인제 국민신당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끝끝내 이루지 못해 불리한 상황에 놓였고, 결국 대선에서 패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선후보로 출마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연합 대선후보로 나온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단일화를 이루며 지지율 1위로 올라섰다. 일명 ‘DJP 연합’으로 불린 두 후보의 단일화는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될 시 김종필을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이 함께 내각을 구성한다는 등의 합의로 성사됐다. 김대중-김종필 단일화로 이 점이 지역별 득표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역별 득표율을 보면 김대중 후보가 수도권 서울·인천·경기, 호남 광주·전북·전남, 제주 등에서 우세를 보였다. 이회창 후보는 경남·울산·부산, 대구·경북, 강원에서 우세를 점했다. 핵심은 충청권인데 대전에서 이회창 29.17%, 김대중 45.02%, 이인제 24.07%, 충북서 이회창 30.79%, 김대중 37.43%, 이인제 29.40%, 충남서 이회창 23.51%, 김대중 48.25%, 이인제 26.14%를 나타냈다. 두 후보 표가 갈라진 가운데 김대중 후보가 김종필 자민련 총재 표를 일부 흡수하면서 앞섰던 것이다. 김대중 후보는 유권자가 가장 많은 수도권에서 우세를 점하고, 호남에서 압승하고서 충청과 호남을 끌어안으면서 50년 만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도 단일화가 화두였다. 주인공은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주역으로 대선 후보로 떠오른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대선후보는 여론조사 방식에 따른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여론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이 단일 후보로 선출됐다. 두 후보는 단일화 유세를 이어 갔으나 선거 전날 정몽준이 노 전 대통령 지지를 철회하면서 파행을 겪기도 했다.

노무현 대 이회창 구도로 짜인 2002년 제16대 대선의 지역별 득표율은 제15대 대선과 비슷했다. 노무현 후보는 당 정치 기반인 광주·전남·전북에서 90%, 제주에서 과반을 얻었다. 반면 이회창 후보는 대구·경북과 경남·부산·울산, 강원에서 크게 앞섰다. 관건은 수도권과 충청이었는데 노 후보는 서울·인천·경기에서 5~6%포인트 차, 대전·충북·충남에서 7.52~15.72% 포인트 차로 우세를 점했다. 특히 자신의 출신지이자 정치적 기반인 경남·부산·울산에서 30% 가까이 득표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2007년 제17대 대선은 노무현 참여정부의 심판론이 강하게 분 가운데 63%라는 낮은 투표율 속에 충청과 호남,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이명박 후보가 절반에 가까운 득표를 올렸다. 정동영 후보는 대전과 충남, 대구·경북, 경남·부산·울산에서는 무소속으로 나선 이회창 후보보다 더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부와 당 지지율이 낮은 탓에 여권 내 이합집산이 심해 집권 동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대 문재인 후보가 맞붙으면서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4대 강 사업 추진으로 국민적 반감을 산 이명박 정부는 측근 비리마저 터지면서 정권 연장 동력이 많이 위축됐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리한 검찰 수사로 스스로 유명을 달리해 민주세력이 부활했다. 정권 재창출과 교체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면서 지역별 승부를 펼쳤다. 두 후보는 각각 정당의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과 호남에서 각각 80%대, 80~90%대 득표를 했다. 수도권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경남·부산·울산에서 박 60%, 문 40%를 점했다. 경·부·울에서 민주계 정당이 40% 가까이 득표했다. 수도권을 보면 서울에서 문 후보가 이겼지만, 인천과 경기에서 박 후보가 앞섰다. 승부는 충청이 갈랐다. 세종·대전·충북·충남 모두 0.3~12%p 차이로 박 후보 손을 들어줬다.

제18대 대선에서는 단일화가 파행에 이르면서 역효과를 냈던 선거로 기록된다.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와 꾸준히 단일화를 추진했으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고, 결국 안 후보의 중도사퇴로 완전한 단일화가 이뤄지지 못했던 선거다. 결국 안 후보 지지율을 온전히 결집하지 못한 문재인 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2017년 제19대 대선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촛불 시민항쟁과 여야 분화로 5자 대결로 치러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수 강세지역 대구·경북과 경남을 제외한 전국 모든 곳에서 득표율 1위를 차지했다. 수도권과 충북, 호남은 물론, 보수색이 강한 강원과 부산·울산에서도 1위를 했다. 경남에서 0.5%p 차로 1위를 놓쳤지만 경·부·울 전체로는 1위였다. 호남 지역주의가 격발해 국민의당이 창당해 표가 분할됐지만 안철수 후보를 광주·전남·전북에서 모두 30%p 가까운 득표율 차로 눌렀다. 어느 한 지역에서 특정 후보에게 80% 이상 표를 몰아주는 일은 없었다. 지역주의가 옅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자구도가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도 정권교체의 여론이 높은 가운데 야권후보 단일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 속에서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안일화(안철수로 후보 단일화)’라며 자신을 중심으로 한 대선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면서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여론조사 방식에 의한 단일화를 제시했지만 자신이 또 결렬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물밑 접촉을 계속해 왔지만 단일화 마지노선이었던 지난달 27일을 넘기면서 현 상황에서 단일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단일화에 대한 두 후보의 셈법이 달라서 이제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이는 분위기다. 딱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기는 하다. 사전 투표의 경우, 오늘(3일)까지 단일화하지 못할 경우, 수백만 표가 사표가 될 공산도 없지 않다.

정말로 단일화가 현실정치에서 불가피할까? 단일화의 주체들은 공통의 가치나 철학을 공유하고 있을까? 진정 후보 단일화가 한국 정치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후보 단일화는 정말로 민주주의적인 정치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할까? 안철수가 단일화 소동의 주역으로 번번이 얼굴을 내밀며 본인의 위상도 추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일화로 표상되는 586식의 낡고 식상한 정치공학을 가장 혐오하고 경멸하는 인구집단, MZ 세대로 호명되는 현재의 2030 청년세대들이 중시하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와는 과연 어떨까?

결국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도자를 국민들(유권자) 스스로가 각자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후보 단일화’라는 것은 투표라고 하는 민주적 결과를 알아보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독재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보 단일화’란 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마련된 제도는 분명히 아니다. 다만 민주 정치를 간소화하기 위해, 또는 비슷한 정치진영 간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수단과 방법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후보 단일화’ 문제는 정치권 스스로가 반민주적이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다분히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행하는 변칙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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