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맺기 방법의 진화
상태바
관계 맺기 방법의 진화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9.22 0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은 타인의 사랑과 인정 등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감과 자존감을 형성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O양은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다.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친 후 A지역에 위치한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에서 매일 메이크업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고, 사비를 들여 주 1회 홈패션 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 과정을 진행하기 전에는 학교 부적응으로 잦은 조퇴와 결석으로 부모님과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걱정되는 청소년이었다. 특히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는 엎드려 있고, 어울리는 친구가 없었으며, 선생님이 물어보는 말 이외에는 자발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죽고싶다는 말을 자주 내뱉었고, 잦은 장염으로 누워있는 시간이 빈번해지면서 병원으로부터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유일하게 O양이 웃을 때는 본인이 즐겨 시청하는 웹툰이나 애니메이션을 시청할 때이다.

얼마 전에는 부모님을 속이고, 일본 만화인 ‘스파이 패밀리(Spy Family)’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다시 약속을 정한 후 롯데월드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곧 있을 만화(웹툰)로 인기 있는 ‘이런 영웅은 싫어’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의상 및 가발 등을 용돈으로 구입했고, 부족한 금액을 채우기 위해서 번개장터를 활용해 기존의 물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O양의 태도에 사회적 규범이 높은 어머니는 O양을 수용하기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H. Maslow, 1943)의 욕구단계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는 모두 동기가 있다고 했다. 그 동기는 위계적 질서가 존재하며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돼야 상위 단계의 욕구를 충족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곧 인간의 욕구는 5단계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인간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부터 차례로 만족하려고 하며, 1단계 생리적 욕구는 의식주, 수면에 대한 욕구이며, 2단계 안전의 욕구는 신체적, 감정적 안전에 대한 욕구이고, 3단계 사회적 욕구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단체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이다. 4단계 존경의 욕구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로 명예욕, 권력욕이 해당되며,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신이 스스로를 인정하고자 하는 욕구로 보았다. 

‘스파이 패밀리(Spy Family)’는 일본 만화로 10만 구독자를 달성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에니메이션 실시간 업로드는 물론 한 때는 전국 서점에서 품절이 속출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품이다. O양은 주인공 4~5세 초능력 소녀인 ‘아냐’를 매우 좋아한다. 아냐는 입양한 딸이지만 엄마 아빠와 매우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면서 가끔 초능력을 발휘한다. O양은 아냐로 분장하기 위해 중국에서 옷을 3만 원에, 가발은 5만 원에 공수했었다. 행사장에서 아냐로 변신한 채 엄마와 아빠로 변장한 타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닐 때면 소속감과 행복감이 90% 차오른다. 그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만났지만, 현실에서 만났을 때에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힘이 솟구친다. 하지만 그에 비해 학교나 집에서의 행복감은 10~20% 정도이다. O양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부모님과 즐겁게 놀아본 기억이 없다. 더욱이 자신의 의견을 얘기해도 아빠는 10개 중 1개 정도, 엄마는 10개 중 3개 정도 들어준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하워드 라인골드(Howard Rheingold, 1993)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나눔으로써 형성하는 사회적 집합체로 정의했다. 이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끼리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으며,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남으로써 기존의 지역 공동체의 한계를 넘어서 공동체적 관계를 확장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했다.

O양은 매슬로우와 라인골드의 말처럼, 사이버공간에서 만난 이들과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소속감과 인정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다. 그래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이들과 지속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우리’ 의식과 ‘집단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우정과 정서적 애착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성장하는 아이들과 기성세대간에는 관계를 맺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기성세대가 그 차이를 인정하고 기다려줄 때, 아이들은 가상 공간에서의 ‘우리’와 실제 공간에서의 ‘우리’를 연결 지으며,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