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사는 풍요로운 마을, 전통이 살아 숨쉬는 ‘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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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사는 풍요로운 마을, 전통이 살아 숨쉬는 ‘장곡’
  • 황희재·정다운 기자
  • 승인 2022.11.0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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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재의 홍주낭만기행 ⑥ 노거수(老巨樹)가 많은 장곡면

한 작가는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형식인 여행기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다양한 실패담과 예상치 못한 역경들이 담겨 있다. 가장 효율적인 일정을 세워 바삐 취재를 다니던 홍성이 아닌 땅에 발을 딛고 천천히 둘러본 홍성, 기자의 시선이 아닌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홍성을 새로운 목소리로 들려주고자 한다. 홍성의 11개 읍·면을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하며 경험한 일들과 방문한 장소들, 느낀 점들을 기록했다.<편집자주> 

사운고택.

 

여행자 황희재의 시선

 

차에 몸을 싣고 어두운 밤길을 달렸다. 맛집으로 소문난 장곡면 상송리의 한 식당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도무지 식당이 나올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길로 한참을 들어갔다. 비포장도로가 끝나면 다시 비포장도로가 이어졌다. 

굽은 길을 따라 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식당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식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셋이서 저녁을 먹으러 온 가족이 전부였다. 나는 인터넷에서 봤던 짜글이 찌개를 주문했다. 밑반찬이 먼저 나왔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맛이었다.

찌개를 먹으면서 ‘맛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기분 좋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저녁 8시까지 운영한다는 화계리의 카페를 찾아갔다. 어두운 시골길 깊숙한 곳에 화려한 네온사인을 가진 카페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1층에는 야외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고 2층에는 타자기 같은 골동품이 놓여있었다.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타자기가 이유 모를 존재감을 뿜어내며 나를 현혹시켰다. 타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침 점원이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며 쟁반을 들고 올라왔다. 아이스티와 아이스커피였다. 
 

사운고택.

다음날 첫 일정으로 장곡면 산성리 소재 사운고택에 방문했다. 국가민속문화재인 사운고택은 사운 조중세(1847~ 1893)의 호를 따서 사운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조중세는 홍주의병 봉기에 아낌없는 군량미 지원으로 힘을 실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운고택은 솟을대문과 사랑채, 안마당과 안채, 별당채 등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간직하고 있었다. 

고택이 있는 산성리에는 고목도 많았다. 장곡면 산성리 388번지에 있는 520년 된 느티나무는 지난 1982년부터 보호수로 지정됐다. 보호수 안내판에는 나무에 담긴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이 나무는 옛날부터 마을의 안녕과 평온을 기원하는 노신제를 지내던 나무로서 땔감이 아무리 귀해도 이 나무를 베거나 부러진 가지도 가져다 쓰면 우환이 있다 하여 마을 사람들이 보호하였다. 얼마 전 마을 회관을 이 나무가 있는 길가에 짓기로 하였는데 회관을 지으려면 느티나무 가지를 한쪽 잘라 내고 길 안쪽으로 깊숙이 들여 짓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제를 지내는 나무를 건드릴 수가 없었는데 마침 여름에 심한 비바람이 불면서 공교롭게도 마을 회관을 짓기로 한 방향에 있는 가지가 부러져 아무 걱정 없이 가지가 부러진 쪽으로 마을 회관을 지을 수 있었다.
 

보호수로 지정된 520년 수령의 느티나무.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가 영험하여 마을의 고민거리를 알아서 해결해 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평상이 놓여있는 곳에서 느티나무를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도약하려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용나무라고 이름 붙이는 게 어떨까?”라고 길동무에게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여행자 정다운의 시선

 

퇴근 후 우리는 장곡면 상송리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시계는 어느덧 저녁 7시를 가리켰고, 혹여 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고 선배와 나는 짜글이 2인분을 시켜먹었다. 사실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 순간 솜씨에 감탄했다. 밑반찬들도 맛이 좋아 왜 장곡면에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조만간 광천읍으로 이사해서 장사를 계속할 예정”이라며 “그때도 꼭 찾아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꼭 가겠다고 약속했다. 배도 채웠으니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MZ 세대가 좋아할 법한 세련된 건물이었고 내부에는 눈길을 끄는 인테리어 소품이 많았다. 특히 점원의 친절한 미소는 장곡에 다시 들러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줬다. 

이어 적당한 주전부리를 사서 숙소로 갔다. 다음날 우리는 ‘사운고택’으로 향했다. ‘구름 같은 선비’라는 뜻의 사운(士雲)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양주 조씨(楊州趙氏) 충정공파의 종가로 중요민속문화재 제198호로 지정된 곳이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해 사진이 잘 나올까 걱정됐지만 고택에 도착한 뒤로는 날씨가 맑게 개며 걱정을 덜었다.

고택 내부 정원은 사운고택의 매력을 더욱 드러내는 요소였다. 만약 한옥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식기박물관을 방문했다. 사운고택과는 다른 매력이 다가왔다. 박물관 곳곳에는 전통 식기들이 가득했고 매력적인 작품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아궁이가 있는 전통 주방은 현대 주방과 비교해 상당히 불편해보였다. ‘어떻게 저 식기를 다 씻고 정리했을까?’ 선조들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물관 옆에는 관람객들이 잘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는데, 야트막한 돌담이 한옥을 감싸고 있었고, 제법 운치가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전날에 이어 한 번 더 상송리의 식당으로 갔다. 
 

맛집으로 소문난 장곡면 상송리의 한 식당. 

제육볶음을 먹었고 주인 아주머니는 서비스로 순두부찌개도 내어줬다. 양껏 배를 채웠다. 장곡 여행은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들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 장곡은 맛좋은 음식과 커피 그리고 아름다운 한옥과 오래된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뿜어내는 곳이었다. 올가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가득한 장곡면에서 가을의 정취를 맘껏 만끽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식기박물관의 전통 주방.
사운고택.
사운고택.
사운고택.
사운고택.
사운고택.
장곡면 화계리의 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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