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상태바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 이성복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5.25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국의 시인 엘리엇(T.S. Eliot)이 그의 장편 시 <황무지(The Waste Land, 1922)>에서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절규했던 4월이 지나면 신록의 계절, 계절의 여왕 등 갖가지 아름다운 수식어가 붙은 5월이 된다. 5월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고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꽃의 여왕 격인 장미가 만발하는 봄의 절정기이다. 중국과 몽골의 황사로 인한 기상이변이나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없다면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므로 청춘남녀의 결혼식을 비롯한 다양한 축제들이 활발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조화로운 계절에 맞게 5월에는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부부의 날(21일) 등 가족을 위한 날들이 많다. 그래서 5월은 ‘청소년의 달’이기도 하지만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게다가 1일은 근로자의 날이고, 15일은 스승의 날이어서 5월은 가족을 포함한 공동체의 화합과 행복, 건강을 바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뜻깊은 달이기도 하다. 필자도 어버이날에 100세를 몇 년 앞둔 어머니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스승의 날을 맞아 초등학교 은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을 보내드려 흐뭇했다.
 
또한 15일은 ‘세계 가정의 날’이다. 1989년 제44차 유엔 총회에서 1994년을 ‘세계 가정의 해’로 정했고 1993년 유엔 총회에서는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취지로 그날을 지정했다고 한다. 그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국가들이 5월 15일을 ‘가정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정의 날은 어린이날을 비롯해 어버이날, 부부의 날을 모두 포함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 2월에 공포된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세계 가정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했으며, 정부는 매년 그날에 기념식을 하고, 건강한 가정문화 창달에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시상하고 있다.

10여 년 전 5월의 어느 날에 붓글씨를 잘 쓰는 지인으로부터 축하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그의 표구된 작품은 아직도 거실에 걸려있다. 5월이면 특별히 되새겨보는 이 글은 많은 가정에서 가훈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명심보감의 치가(治家) 편에 나오는 이 글의 원문이 ‘자효쌍친락(子孝雙親樂)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인데 ‘자식이 효도하면 두 어버이가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뤄진다’로 직역할 수 있다. 대학(大學)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일맥상통하는 글로서 가정의 달에 어울리는 경구라 떠올려본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인 가구가 매년 역대 최대치를 갱신하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1년 전체 2145만 가구 중 1인 가구는 717만 가구로 33.4%를 차지한다. 10집 중 3집은 혼자 사는 1인 가구인 셈이다. 가정이라고 하면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2인 이상으로 구성된 가구로서 부부를 기본적 구성단위로 부모와 자녀가 같은 공간에 거주하는 환경을 생각한다. 따라서 1인 가구의 급증은 출산율 저하와 더불어 가정의 해체가 가속화됨을 의미한다.

한국은 2025년이 되면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노인 빈곤’에 대한 대처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9.6%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를 나타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OECD(2023)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 당 한국의 자살자는 24.1명(2020)으로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특히 남성 70대(64.5명, 2020년), 80대(118명, 2020년)의 노년층에서 다른 연령대 대비 월등하게 높다. 한국의 출산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0.78명으로 장래 국가소멸 위험 대상으로 분류된다. 이제는 결혼도 선택이고 출산도 선택인 시대가 됐다. 유엔 산하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공개한 ‘2023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95점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 35위에 그쳤다. 가정의 달 5월에 보게 되는 행복성적표들이라 씁쓸하다. 

오늘날의 각종 사회문제는 가정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반인륜적인 사건들을 언론을 통해 접하며 살고 있다. 가정은 곧 사회이다. 가정에서의 불안요인들은 학교나 직장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결국에는 사회문제요 국가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시발점이 되는 가정이라는 정원을 어떻게 잘 가꿔 아름다운 사회, 행복한 국가로 연결되도록 할 것인지 한 가정의 부모뿐 아니라 학교와 직장에서도 늘 고민하고 정부는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성복<고령친화산업정책 이학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