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 웃음소리 가득한 ‘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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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웃음소리 가득한 ‘벌말’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2.10.1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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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연가(敬老堂戀歌)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① 광천읍 신진2리 벌말경로당

 

△ 왼쪽부터 김세진(78)·이윤복(85)·김기운(82)·이순희(81)·신미순(80)·윤성례(79)·한경숙(78) 할머니, 최광진(93)·임승택(84) 할아버지.


농촌지역의 초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교육여건과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빠져나가고 우리네 부모님들 세대가 비어가는 농촌을 지키고 있다. 이제는 백발이 성성하지만 여전히 억척스럽고 바지런한 손길로 동네 곳곳을 돌보는 이들은 삼삼오오 마을 경로당에 모여 지나온 삶과 마을의 대소사를 이야기한다. 홍주신문은 관내 경로당 탐방격인 ‘경로당 연가(戀歌)’를 통해 경로당에 모이는 어르신들의 다양하고도 특별한 삶의 이야기와 함께 마을에 얽힌 구전, 역사 등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편집자 주> 




대부분의 시골 경로당 10월 풍경은 비슷하다. 바쁜 추수기를 맞이해 경로당을 찾는 어르신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광천 신진2리(이장 신상권)의 벌말 경로당(노인회장 염규태·85)은 1년 365일 경로당을 찾는 10여명의 단골 어르신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지난 7일 오후 2시, 벌말경로당서 기자가 만난 어르신들은 모두 12명. 일찍이 전화통화로 취재 약속을 잡았던 임승택(84세) 할아버지는 “다른 때 같았으면 남자들이 서넛은 더 있는데, 어제 오늘 통 안 보인다”며, “남자들은 보통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여자들은 옆방에 모여 민화투를 치는 게 우리네 일상”이라고 소개했다.

임 할아버지 소개대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각방을 쓰고 있었다. 42인치 평면티비, 에어콘, 쇼파, 전화기 등 다양한 가전용품들이 각각 설치된 방에서 할머니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화투장을 맞추거나 간간히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할아버지 두 분은 방 한 켠에 놓인 의자에 앉아 티비 뉴스나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경로당을 찾는 어르신들 중에서 최고령자인 최광진(93세) 할아버지는 지난 7월, 평생을 같이한 할머니와 사별한 후 거동이 약간 불편하지만 매일 같이 경로당을 찾아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는 것이 임 할아버지의 설명.

묵묵히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들과 달리 할머니들이 계신 방에선 연신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4명이서 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화투 그림을 맞추는데, 재미있는 것이 오고가는 것이 흔한 10원짜리 동전도 아닌 팥, 콩, 돈부 따위의 가을곡물들이다. 화투 중간 중간 일상적인 소식을 묻고 주고 받는 할머니들께 예전 신진리의 모습을 묻자, 김기운(82) 할머니는 문득 ‘물탱크’ 이야기를 꺼내신다. 김 할머니 기억 속 마을 물탱크는 예전 장항선 철로를 다니는 석탄열차의 냉각수를 보관했던 물구덩이였다. “6·25 때는 인민군들이 물땅꾸에다 사람 빠져죽이곤 혔어. 그래서 그런가 옛날에는 옆 동네까쟝 그 물이 약물이라고 소문이 안났겄남…” 임 할머니가 말하는 물탱크는 이제는 매몰돼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경로당에 자주 들리는 어르신의 자손들은 모두 외지로 출타했다. 젊은이가 없으니 예전처럼 큰 농사를 짓지는 못한다. 자식들도 다 장성해 일가를 이뤘고, 이제는 작게 텃밭을 일구며 다소 한가한 삶을 보내고 있다. “내가 막 결혼하고 청양서 광천에 올적만 해도 광천인구가 2만8000명이나 됐었는디 지금은 이렇게 바짝 줄어들 줄 누가 알았겄어” 담담히 번영했던 광천의 옛 모습을 회상하는 임 할아버지는 요즘엔 홍성에 도청이 들어서는 것에 작은 희망을 걸고 있다.

경로당 어르신들은 1년에 한 번씩 국내외 명승지로 나들이를 다녀오고 있다. 경로당 곳곳에 걸린 사진액자는 어르신들이 함께했던 여행의 기록들이다. 사진 속 활짝 핀 꽃나무 앞에서 꽃보다 환하게 웃고 계신 벌말경로당 어르신들. 한없이 자애로운 우리네 시골 부모님의 얼굴이다.

* 갑자기 후두둑 지붕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가을 소나기가 무심히 내리자, 마당에 말려놓은 고추며 깻잎대 걱정에 뒤도 안보고 달려 나가시는 할머니들. 때문에 실제로 경로당에 계셨던 어르신들 중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셨던 두 분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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