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고 배짱 좋은 남자, 이 시대의 리더 편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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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고 배짱 좋은 남자, 이 시대의 리더 편기범”
  • 홍주일보
  • 승인 2023.08.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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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삶의 길을 묻다 〈8〉
나의 삶, 나의 길-편기범 국제스피치학회장·너른내장학회 이사장 〈4〉

홍성 광천 출신으로 전국 스피치 웅변대회에서 1967년 대통령상 197호, 1971년 대통령상 457호, 1977년 대통령상 861호 등 대통령상(大統領賞)을 3회 수상한 웅변인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연설 지도 경험이 있는, 40년 넘게 서울에서 웅변을 가르친 웅변계 대부(代父)로 불린다. 고향인 광천에서는 ‘기부계 대부’로 통한다. 법무연수원, 경찰대학, 경찰종합학교 스피치학 초빙교수, 행정안전부 인재개발원 스피치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편기범 웅변연설집’과 ‘8주 완성 웅변 연설 비결’ ‘선거 연설의 방법과 실제’ 등 다수의 책을 집필, 책을 펴내기도 했다. 2021년 37년 만에 고향인 광천으로 귀향했다. 귀향 이후 2021년 광천중학교총동문회 체육대회 대신 연탄 나누기 봉사를 시작으로 ‘광천을 말하다’ 연사로 광천 발전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광천의 75세 이상 독거노인 130여 명에게 연탄과 쌀, 떡국 등의 나눔 행사도 하면서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지난 1979년 쌀 한 가마니가 3만 원이던 시절 광천초등학교 졸업생 10명에게 매년 장학금 50만 원씩을 후원하기 시작해 44년에 걸쳐 한 해 동안 모은 돈 30~40%씩을 떼어 66차례 7억여 원의 장학금을 기부해 오고 있다. 2000년 ‘너른내장학회’를 설립해 너른내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홍주신문의 ‘리더에게 삶의 길을 묻다’ 5번째 기획으로 ‘나의 삶, 나의 길’ 웅변 인생, 기부 인생-편기범 국제스피치학회장·너른내장학회 이사장 편을 ‘한국산문 김미원’의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19대 국회의장 강창희(대전고 동기) 의장의 홍보 특별보좌역을 맡고 기념촬영.
  •   뼛속 깊은 광천 사랑

선생은 40여 년 전부터 ‘소리 너무 질러’ 생긴 직업병 천식이 심해져 37년 만에 공기 좋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쇠락한 고향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숲도 보고 나무도 보는 시야를 가진 그는 고향을 지키며 동고동락했던 선후배들과 친구들을 결집해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광천을 말하다’ 연사로 나가 한때 융성했던 광천의 옛 모습을 회상하며 광천이 다시 일어서야 한다며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고, 전국의 웅변인들을 모아 김좌진 장군 생가와 한용운 선사 생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또 선생의 제의로 지난 2021년 귀향 첫해, 광천중학교총동문회 15대 회장과 2006년 광천중학교 개교 60주년 당시 광천중학교총동문회장을, 또 2018년까지 광천중학교총동문회장을 맡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 등으로 3년간 행사를 갖지 못했던 광천중학교총동문회 이사회에서 ‘나눔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1971년 두번째 대통령상을 타고 아내와 찍은 기념사진.

그리고 편기범 자신을 나눔위원으로 임명해달라는 허락을 받은 후 4000여만 원을 모금해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75세 이상 독거노인 130명에게 연탄과 광천에서 나는 즉석 떡국, 쌀국수, 광천토굴새우젓, 김, 생필품 등을 나누는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이듬해에도 인구 8000명에 65세 이상 인구가 2500명인 광천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3500만 원의 예산으로 경제 형편이 어려운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는 43가구에 연탄 400장, 쌀 40kg, 쌀국수, 떡국, 김 새우젓 등 136가구에 전달하는 행시도 가졌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어느 동창회에서 생각하지 않은 행사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광천중학교총동문회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평가를 받아보자는 자긍심의 계기가 됐다.

“이 사람이 1000만 원 내고 솔선수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안 낼 수가 없어유. 다른 사람이 하면 절대 그 돈 못 걷어유”라고 동행한 고향 친구 강신욱 씨가 옆에서 거들었다.
후회되는 일에 예상치 못한 답을 했다.

“월간 《문학사상》 상무 1년 하다가 그만둔 거예요. 1978년 웅변학원을 하고 있는데 문학사상을 일본의 《문예춘추》지 이상의 문예지로 만들테니 영업 등 관리를 좀 해달라는 부탁에 선뜻 좋아서 갔었고 1년을 근무했지. 1979년에는 뜻을 이루기 위해 고향에 최초로 태양열주택을 짓고 내려오려고 할 때 사장 자리를 맡길 테니 내려가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문학사상》이 당시 2만 3000부를 발행할 때였으니까. 거기 남아 이어령 교수를 지켰으면 최고의 문학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잡지 만드는 게 사실 적자여(웃음).”
 

조계종 청담스님상(좌측)과 국무총리상 수상 기념사진. 학원원장 초창기 시절.

이어령 선생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서슬 퍼런 유신 시절 상무 권한으로 《동아일보》에 《문학사상》 백지광고를 냈어요. 문학계가 발칵 뒤집혔지요. 이어령 선생이 불러 갔더니 내가 책임질게, 주간이 시켜서 했다고 하라고 하셔서 큰 그릇이라고 생각했지요.”

선생은 말 잘하는 사람이 가질 법한 허풍과 허세 없이 비상한 기억력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광천이라는 말만 나오면 흥분하고 사람 좋아하는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1979년 충청남도 제1호 태양열주택으로 준공식을 하던 날 800명이 와 소머리 삶고, 돼지 잡아 잔치 벌였던 40년 전에 지은 태양열 집을 수리해서 텃밭을 가꾸고 편백나무를 심고,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밥을 먹는 기쁨을 누리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아내와 편안하게 살고 있다. 시간만 나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리더의 스피치, 리더와 보스와의 차이점, 통일안보에 대한 강연 등 많은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스피치가 되느냐?고 하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스피치 분야에 대해서는 스킬과 소재 선택법, 감동을 주는 법 등은 알고 있으니까. 스피치와 연관되기 때문에 좋은 스피치 공부는 막판에 보는 보람이랄까. 묘미랄까. 강연에서 쉽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요즘에서 느낀다고 말한다. 스피치는 과학이나 물리학 분야가 아니고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스피치 능력은 나도 모르게 생겼다. 내가 그 분야에 대해 조금만 공부하면 좋은 강연 원고를 만들 수 있다고 느낀 것이 50~60년 만에 느꼈다고 고백한다.
 

1961년 광천중학교 재학시절. 웅변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후 촬영한 기념사진.

선생은 이루지 못한 정치가의 꿈을 한으로 남기지 않고 나눔으로 승화시킨 사람이다. 가끔 정치에 대한 아쉬움과 엷은 탄식을 비치는 선생에게 카리스마는 권위가 아니라 영향력인데 선생이야말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어른이라는 말과 세상 사람이 싫어하는 직업군이 ‘정치가’라는 말로 어쭙잖은 위로를 건넸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에 나오는 ‘자네 얘기는 잘했는데 그들의 가슴에다 대고 얘기하지를 못했어. 그게 문제야. 그들의 가슴에다 대고 말을 해야 해. 그래서 그들의 가슴에 불을 댕겨야 한다고’라는 문장 같은 사람을 만났다. 인터뷰 내내 ‘말 잘하고 배짱 좋은’ 남자의 잘 짜여진 1인 종합예술을 보는 느낌이었다. 장사익 선생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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