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속의 탄벽 같은 절망에서 희망을 캐내고자 하는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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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속의 탄벽 같은 절망에서 희망을 캐내고자 하는 동심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10.19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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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택 시인의 동시집 <탄광마을 아이들>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당시 국내 최대 민영탄광인 동원탄좌 사북영업소의 임금 소폭 인상과 이에 편승하는 어용노조에 대항해 광부들이 일으킨 노동항쟁인 사북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북사태는 1980년대 노동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됐다. 

1976년부터 15년 동안 강원도 탄광 마을과 산골 마을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북사태 이후 어린이들과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임길택 시인이 1990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실천문학사’에서 한국문단사 최초로 탄광 마을 어린이들의 삶과 정서를 담은 동시집 <탄광마을 아이들>을 출간했다.

시집에는 굴속의 탄벽 같은 절망에서 희망을 캐내고자 하는 탄광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 특유의 감동적인 긍지와 정서가 넘쳐흘러 읽는 이의 심금을 마냥 울리고 있다.

“얼마나 깊이 들어가야/일터에 닿을 수 있을까/한겨울에도 땀이 흐른다는데/그곳은 어떤 데일까//까만 탄벽 앞에서도/시간은 흘러갈까/거기엔 어떤 소리들이 들릴까//도시락을 먹을 때면/머리등 불빛 속/춤추는 탄먼지들을 보신다지요//그리고/그곳의 쥐들을/아버지들은 내쫓지 않으신다지요/나무껍질을 갉아먹고 사는 그들에게/오히려 먹던 밥 던져주며/가까이 살아주어/고맙다 하신다지요//쥐들과도 함께 친구하신다는/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아버지는 하늘나라에 사셔요”(시 ‘굴속’ 전문)

고 이오덕 아동문학평론가는 뒤 표지글에 “이 시집은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죄다 잃어가고 있는 순박한 삶과 마음을 용하게 잘도 찾아내어 보여주고 있다. 이는 시인이기 이전에 탄광마을과 산골 학교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훌륭한 교육자로서의 지은이만의 쓸 수 있는 시요, 몸으로 살아가는 창조의 세계라 하겠다”면서 “온 산천이 새까만 곳, 모두가 떠나고 얼굴 찌푸리며 지나가는 땅, 그곳에서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힘겹지만 따뜻한 삶을 꾸려가는 아이들야말로 세상의 꽃이요 빛이 아니겠는가”라고 논했다.

시인은 시집 머리글을 통해 “탄마을에 살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적었습니다. 온 식구들이 함께 읽으며, 지금도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그곳의 친구들을 마음으로나마 깊이 만나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소망하고 있다. 시집은 시인의 그 간절한 소망에 부응, 출간한 지 30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 수많은 독자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시인은 1997년 폐암으로 젊은 나이에 타계했지만, 초등학교 교사 시절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로 풀어내도록 인도했으며, 진실한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어린이들의 동시들을 모아 다수의 문집으로 엮었다. 그 문집들에 실린 동시 중에서 뽑아 2006년 보리출판사에서 강원도 사북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시 112편을 엮어낸 동시집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와 강원도 정선 여량초등학교 봉정분교 어린이들의 시 89편을 엮어낸 동시집 <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가 출간됐다. 
 

1952년 전남 무안에서 출생한 시인은 목포교대와 방송통신대 영어과를 졸업했으며,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 <할아버지 요강>, <똥 누고 가는 새>, <산골 아이>, 동화집 <산골마을 아이들>, <느릅골 아이들>, <탄광마을에 뜨는 달>, 수필집 <하늘 숨을 쉬는 아이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등이 있다.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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