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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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밥상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3.11.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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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 〈43〉
이숙자 〈병원에서 보았던 꽃〉 36×26㎝ 수성싸인펜.
이숙자 〈병원에서 보았던 꽃〉 36×26㎝ 수성싸인펜.

대교리 1구 어르신 한 분이 나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2달간의 프로그램을 마치는 날 아침이었습니다. 

“점심 약속이 없으면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같이 먹자”라고 제안하셨습니다. 아마도 점심밥을 준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들은 점심시간 전부터 분주하셨습니다. 작년 가을에 담았다는 김치를 처음으로 헐기도 하고 된장에 박은 깻잎은 쪄서 내오시기도 하셨습니다. 집에서 가져오셨다는 명란젓에는 노란 들기름을 듬뿍 치셨고 물에 우린 짠지와 마늘종장아찌, 계란찜과 쑥갓나물, 오징어젓갈을 연달아 내오셨습니다. 연두색 완두콩이 박힌 흰밥에 고기를 넣은 미역국으로 점심상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등이 굽은 어르신들이 손수 차린 ‘감사의 밥상’을 마주 대하니 눈물이 울컥 솟구쳤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지어주셨던 내 생일날의 밥상이 생각나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 내 생일을 잊고 계셨던 것을 뉘우치시고는 급하게 장을 보아 오셨습니다. 통통하게 여문 해콩을 토방에 앉아 까시더니 미역국과 함께 상을 차려 내오셨습니다. “오늘이 네 생일이란다. 잊지 말아라. 배고프게 살지는 말아야지!” 생일에 굶으면 평생 배고프게 산다는 듯 주문을 욀 때처럼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파란 해콩이 점점이 박힌 하얀 쌀밥과 조선간장을 살짝 친 미역국이 그렇게 달고 맛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어머니가 지어주신 밥상을 마주 대했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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