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담배 소송’, 국민 정서에 맞는 판결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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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담배 소송’, 국민 정서에 맞는 판결을 기대하며
  • 이성복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6.27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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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칼럼·독자위원

국민건강보험의 보험자인 건보공단이 가입자의 대리인으로서 3개 담배회사인 국내의 KT&G, 외국계인 한국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를 상대로 2014년 4월 흡연 폐해 구제를 위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건보공단은 20년 이상 담배를 피운 폐암 환자 3456명을 대상으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지급한 급여비 약 533억 원을 담배 제조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며 고소했고, 소송 제기 후 6년 7개월의 긴 공방 끝에 2020년 11월, 1심 법원은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와 담배회사의 불법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공단은 2020년 12월 즉각 항소를 제기해 2심이 진행 중인데 흡연과 암 발생과의 인과관계가 있는 데도, 법원이 개별사례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암 발생과 흡연과의 인과관계는 국내 법원의 판결과 관련 학계의 역학조사 결과 보고로 이미 입증됐다. 서울고법 2007나18883호 판결에서도 흡연력 20갑년 이상, 흡연 기간 30년 이상의 폐암(소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이 흡연과 인과성이 인정됐으며, 2014년 4월 개인 담배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의 원심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2014년 1월 삼성서울병원과 미국 브로드 연구소는 흡연과 폐암(편평상피세포암)의 인과성을 95% 이상으로 보고한 바 있다. 2013년 8월 건보공단과 지선하 교수 연구팀의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흡연자 대비 흡연자의 질병 발생 위험이 평균 2.9~6.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흡연자보다 흡연자가 폐암을 일으킬 확률은 남성의 경우 후두암 6.5배, 폐암은 4.6배, 여성의 경우 후두암 5.5배로 조사됐다. 당시 흡연으로 인한 암, 신장·뇌혈관 등 35개 질환의 추가 진료비 지출도 연간 1조 7000여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배회사의 위법성은 미국 등에서 이미 인정된 사실이다. 미국에서 공인된 위법 행위는 국내 재판에서도 결코 부인될 수 없다. 미국 연방법원은 2006년 담배회사들이 50년간 흡연의 위험성을 부인하고 왜곡·축소해 온 사실, 흡연이 니코틴 약물에 의한 중독이라는 사실 및 흡연자의 중독 상태가 유지되도록 니코틴 수준을 조작·조절해 온 사실 등 기망행위에 의한 위험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특이한 것은 미국에서도 1954년부터 1992년까지 800여 건의 크고 작은 개인 소송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전부 패소했으나 46개 주정부가 제기한 소송은 1998년 11월 2060억 달러(약 220조 원)의 배상 합의를 끌어냈다는 점이다. 플로리다주에서는 주정부가 위해물 제조업체에 의료비용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피해의 개별 입증 대신 통계로 의료비용을 산출토록 법률을 제정한 후 1997년 3월에 연방대법원의 합헌 판결을 받았다.

캐나다는 1997년에 ‘담배 손해 및 치료비 배상법’을 제정해 2005년에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받았는데 이에 따라 진료비 회수에 대한 주정부의 직접적인 소송 권한이 부여됐고, 역학적·통계적 방법을 통한 인과관계 및 손해의 입증을 인정했다. 담배회사들은 자신의 의무 위반으로 질병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책임 감면이 가능하게 했다. 그 이후 주정부들은 ‘담배 손해 및 치료비 배상법(일명 ‘담배소송법’)’을 근거로 대규모 담배 소송을 효과적으로 진행해 왔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흡연의 해악을 살펴보면, 담배는 69종의 발암 및 발암 의심 물질과 4800여 종의 화학물질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흡연을 세계 공중보건 문제 1위로 지정할 정도로 흡연의 폐해는 심각하고 흡연으로 인한 조기 사망으로 노동력 상실 등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손실도 매우 크다. 흡연은 모든 암의 발생원인 또는 위험 요인의 30~40%를 차지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임산부 흡연 시 태아 뇌세포 손상, 영아 돌연사 위험이 증가하며, 니코틴의 중독성은 헤로인, 코카인, 마리화나, 알코올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지난 2003년 5월 열린 ‘제53차 세계 보건총회’에서는 담배의 규제에 관한 세계보건기구 기본 협약(WHO FCTC)이 채택됐는데 우리나라가 2005년 5월 비준한 이 협약은 “담배의 중독성·치명성을 전제로 정부가 담배규제를 위한 공중보건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건보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2022년도에 흡연으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은 3조 5917억 원으로 최근 5년간 평균 4.5%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비 외에도 금연 지원 사업에 연간 3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의 19세 이상 성인의 흡연율은 17.7%이다. 청소년의 흡연율을 반영한다면 흡연 인구는 더 늘어날 것이다. 청소년기에 호기심에서 비롯된 흡연자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 담배가 좋아서 흡연을 지속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흡연자들은 담배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중독성 때문에 마지못해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들은 적어도 한두 번쯤 금연을 시도해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금연지원센터나 의료기관 등을 통해 금연을 시도하는 흡연자들의 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호흡기를 통해 흡입하는 담배에 포함된 유해 물질이 시중에 판매되는 식품이나 음식물에서 발견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 제조회사나 음식점은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영업을 지속할 수 없는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담배의 중독성 때문에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흡연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이 있고 그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사회가 부담하는 상황에서 담배회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없고 정부도 이런 방식으로 기업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국민정서에 반하는 일이다.

전국적으로 지방의회와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건보공단의 담배 소송에 대한 지지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특별한 이익을 위해 집단행동을 벌이는 이익집단이 아니다. 건보공단의 담배 소송이 보험자로서 가입자의 재정 관리를 위한 당연한 책무이며 사회적 정의와 형평성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공감하기 때문에 2014년 담배 소송 제기 시부터 동참하고 있다.

재정 당국에서도 과거 국민 건강에 해로운 담배 전매사업을 통해 국가 재정을 일정 부분 확보해 왔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롭기 위해 소극적인 자세로 담배회사를 옹호하는 오점을 남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법부도 이제는 전체 국민의 시각과 사회적 정의의 관점에서 판결을 고려할 때가 됐다. 세계적인 추세에 부합하고 상식적으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 결과가 조속히 나올 수 있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기원한다.

이성복 <대한고령친화산업학회 이사, 충남도립대 대학혁신위원,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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