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
상담학 박사
칼럼·독자위원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나태주 시인은 이것이 행복이라 했다.
H씨는 80세 노인이다. 아침이면 인근에 살고 있는 외손자 O군의 등교를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건다. 임대아파트 현관 앞에 서 있는 O군을 조수석에 태운다. O군은 꾸벅 인사를 하고, 앞만 응시한 채 말이 없다.
H씨는 서먹함을 날려버리기 위해 잠은 잘 잤는지, 아침은 무엇을 먹었는지 등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그때마다 O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예”로 일축한다. 교문 앞에 도착하면 차에서 내려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는 손자 모습에 울컥함이 차오른다.
H씨는 아들과 딸을 둔 성공한 직장인이었다. 사회의 그늘진 곳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개혁 활동을 벌였고, 종교적 신념으로 봉사와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열심히 살았다.
‘자식은 엄마가 키운다’는 가치관 때문인지 아내에게 자녀 양육을 전적으로 위임했다. 아내는 아들에게 시간과 물질을 편향적으로 많이 지원했고, 선택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제공했다. 그때마다 딸은 서운함과 불평등을 아내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요구를 무시할 때가 잦았고, 갈등은 깊어 갔다. 당시 H씨는 딸의 태도를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성인이 됐을 때, 딸은 자신의 짐을 챙겨서 집을 나갔다. 가출한 것이다. 소식이 단절됐다. 타인을 통해 간간히 들려오는 딸의 삶은 H씨의 마음을 불편케 했다. 무의식적인 열망이었을까. H씨가 한국을 떠나 외국에 나갈 기회가 주어졌다. 10여 년을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다급한 전화가 울렸다. 한국에서 딸과 손자를 임시로 보호하고 있는 담당자의 전화였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40대 중년이 돼 만난 딸은 충격적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H씨는 딸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과 후회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린 시절 딸에게 주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을 손자와 손녀에게 지원하기로 작정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 인근에 딸의 가족이 생활할 아파트를 마련했다. 아침, 저녁으로 드나들면서 손자와 손녀의 일상에 관심을 가졌다.
어느 날, 손자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무슨 노래인지 물었다. 지올팍(zior park)의 크리스천(Christian)이라는 노래였다. H씨 입장에서는 매우 선정적이고 반기독교적인 노래로 생각됐지만 비난하지 않았다. 또한 어린 소녀들이 총을 쏘면서 즐기는 ‘블루아카이브(Blue Archive)’ 게임을 밤늦게까지 한다는 것도 알았다. H씨 입장에서는 건전하지 않다고 판단됐지만 이 또한 지적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손자는 학교와 집, 그리고 교회에서의 식습관이 독특했다. 식사할 때 음식을 절반밖에 먹지 않았고, 과다섭취에 대한 불안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성장하던 순수하고 건전한 학창시절 모습은 없고,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시간을 보내는 답답한 모습뿐이었다.
H씨는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다. 그리고 본 기관과 연락이 닿았다. 스마트쉼센터에서는 H씨와 손자에게 가정방문 상담을 지원했다. 상담을 받으면서 H씨는 조금씩이나마 손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과거, 딸이 사위의 폭력으로 힘들었을 때, 아이들이 시설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이때 버려짐에 대한 외상후스트레스가 매우 컸고, 뚱뚱한 외모로 왕따를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예민할 정도로 음식 조절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현재, H씨는 손자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80세라는 나이에 아이들의 등하교를 시키고, 마트에서 시장을 보고, 일상을 돌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괜찮다. 간혹 학교에서 안내문을 카톡으로 보내오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딸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O군은 Y고등학교에 합격했다. 겉으로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손자이지만 외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해 기쁘다. 손자는 내년 3월이면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 순간에 또 다른 이별이 올 것을 안다. 얼마 전부터 H씨 몸에 대상포진이 발생해 고생하고 있고, 아내도 파킨슨 진단을 받은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H씨는 손자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집을 마련해 줬다는 것도 감사하다. 힘이 들 때, 마음속으로 외할아버지를 작은 구름처럼 떠올린다는 것도 감사하다. 그리고 외로울 때 지올팍의 크리스천을 혼자 부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그러한 날들이 저축되다 보면 사랑하는 딸의 몸과 마음도 회복이 되고, 행복의 씨앗이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도데체 왜…?
온통 물음표 투성이 인생들을 들여다보는 힘듦은 아직도 내적인 힘이 많이 부족한 저를 인지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