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전대학교 교양과 교수
행정학 박사
칼럼·독자위원
국민의 혈세가 술술 새고 있다. 보조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고들 말한다. 기초자치단체마다 보조금의 상당액이 무분별하게 편성 집행되고 있다. 지자체의 보조금은 관리위원회를 조직해 심의를 거치지만 걸러내기엔 한계가 있다. 위원회는 태생부터 구성원들의 전문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일부는 지역산업 중심으로 형성되다 보니 보조목적의 심층적인 논의보다는 이해관계에 엮인다. 주관이 표출되거나 심지어 일부 위원들은 지원단체를 대변하거나 옹호까지 서슴지 않는다. 선심성 예산이 명백해도 신청기관이나 조직의 대표, 지역사회 내 위상과 상호관계까지 고려된다. 종국에는 단체장과 공직자의 안면과 입김까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지방보조금 신청은 담당자의 검토를 거친 후 예산 부서와 관할 간 협의와 조정이 선행된다. 조정된 요구액은 보조금 관리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건별로 조율된다. 지역산업 활성화와 주민 복지와 각종 문화생활 등 목적에 부합성 검토와 신규사업일수록 신중하게 토의된다. 새로 신청된 사업이나 프로그램은 사업 목적과 필요성, 효율적인 집행과 예상 성과 등에 대해 담당자들의 현장 조사와 내 외부 전문가를 활용한 사전 검토가 매우 중요하다. 보조금의 지원과 선정 기준을 엄격하게 제한해 마구잡이로 책정되는 일을 없애야 한다. 왜냐하면 보조금은 관성의 법칙이 작용해 일단 선정되면 다음 해에 조정이나 삭감이 거의 불가하다. 물가와 인건비 상승까지도 반영돼야 하기에 대부분의 정부예산은 점증주의(incrementalism)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상당수의 보조금이 전년 대비 증액되는 실정이다.
부서별로 관할 보조금은 주무관과 반드시 외부 전문가의 의견까지 적극 반영돼 옥석을 가려야 한다. 즉 사전에 선별되고 부작용과 낭비 사례는 철저히 차단돼야 맞다. 민선 이후 윗선의 눈치도 살펴야 하고 또 연줄 압력까지 작용해 별다른 여과 없이 관리위원회까지 상정되기도 한다. 관료제의 특성상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럼에도 보조금 총괄자는 담당들의 요구에 명백한 증거를 요구하고 무분별한 상정을 막아야 한다. 이 절차가 무뎌지면 제안 사업을 거부하거나 통제가 어렵다.
보조금은 특성상 상위 법령으로 설치된 기관, 예컨대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나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지회 등 수도 없지만 여기에 관리위원회의 심의 재량이 반영될 여지는 없다. 나아가 사회단체나 민간 조직의 신청이 해마다 증가하고 폐지보다 신규가 줄 서있다. 어디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얼마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지 충분히 들여다보여서 호시탐탐 보조금을 탐하고 있다. 주민지원을 표방하며 구성원들만 배만 불려도 좀비처럼 팽창하는 보조금 유린 조직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걸러낼지 고민되는 대목이다. 선량한 주민은 영문도 모르고 여기저기 행사성 프로그램에 동원된다. 낭비되는 예산들이 어떻게 조달되어 사용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보조금은 주민 생활에 꼭 필요한 사업이나 프로그램들이 삶의 질을 높여주고 지역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할애돼야 한다.
보조금 낭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얽혀진 사슬을 걷어내기란 쉽잖다. 담당 공무원조차 속내가 버젓이 읽혀도 손쓰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같은 통속으로 몰리기도 하지만, 공공조직의 특성상 재갈이 물리거나 다층구조의 조직압력을 견딜 재간도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권력을 등에 업고 보란 듯이 제안하며, 봉사 명분을 앞세워 끊임없이 파이를 키우려 한다. 일부 개인이나 사조직들은 대중의 인기까지 영합하면서 포플리즘 그 자체다.
이제 구체적인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 부실한 보조금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를 위해 관리위원회의 조직과 운영을 전문성 위주로 철저히 개선해야 한다. 계선조직은 담당 직무에 대해 철저한 검증과 논의로 책임행정을 펼쳐야 한다. 법적 권능을 부여해서 혈세가 새는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 언제까지 쌈지로 여기면서 요건만 갖추고 눈만 껌벅거려도 챙겨주는 식의 보조는 제한돼야 한다. 제대로 거르지 못하면 직무태만이다. 어려운 민생을 구하고 실질적인 지역사회의 제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효율적인 보조금이 쓰이게 하자.
전년도 집행 성과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엄격하게 평가하고 비효율적인 보조금은 과감히 폐지 삭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관리 감독과 책임추궁을 피하려고 무사안일한 평가는 이제 더 이상 곤란하다. 예컨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전자출판(e-book)이 보편화됐지만, 보조금의 절반 이상을 종이인쇄로 할애하려는 아날로그적 발상은 사전에 통제돼야 한다. 본예산에 반영되지 못한 건을 추경에 슬쩍 올리는 편법도 안된다. 손쉬운 프로그램으로 검은 손들의 욕구 충족에 현혹된다면 일탈이다.
우리 사회는 공공 부문 이외 민간에서 다양한 사회단체가 운영되고 있다. 헌법기관에서부터 법적 근거 없이 일반 국민이면 누구나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다. 불법이나 위법은 실정법의 제재를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유로이 활동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조직은 구성 목적과 전략 그리고 인적, 물적 자원을 갖춰 형성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도 법적 지위를 확보해 사업의 주체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법적 권위를 인정받아야 보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으며, 법인격이 주어진 단체나 기관에 대해서는 자연인과 같은 수준의 법적 활동이 가능하다. 제도적으로 지자체는 중앙에 예속돼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기관이 많지만, 재정이 어려워 지방정부만 쳐다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백번 양보해서 공익(public interest) 목적으로 설치되고 자체의 재원으로 사업 성과를 내며 구성원들의 참여가 사회적 의미를 더해가면서 지역공동체의 이익을 반영하면서 어떤 형식으로든 대외적으로 인정받으면 공적 자금은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 자생 단체가 바람직하게 운영되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경계상에서 애매한 단체가 부지기수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제도 기관 이외에 자발적 단체가 긍정적으로 설립돼 가치 있는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 때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우려는 사라질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