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선득헌디 구수룸허게 머리 고기에 칼국수 어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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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선득헌디 구수룸허게 머리 고기에 칼국수 어때유?
  • 이정은 수습기자
  • 승인 2024.11.29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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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신문이 추천하는 맛집] 〈3〉 홍성읍 ‘현미집’
현미집 김준환 대표.
현미집 김준환 대표.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수습기자] 어둠이 내려앉은 이슥한 시간,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불이 켜지는 주방이 있다. 이번 주 소개할 맛집은 1988년을 시작으로 37년째 변함없는 맛을 지켜오며 지역민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맛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곳으로, 광천역과 마주한 길목에 자리한 ‘현미집(대표 김준환)’이다.

시간이 멈춘 듯 정겨운 풍경이 줄지어진 건물과 간판들 사이 현미집의 미닫이를 밀고 들어서면, 길목의 분위기와 마치 어깨동무라도 한 듯 나란히 연결되는 공간이 펼쳐진다. 한편에 훤히 보이는 주방에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장사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금세 들어찬 자리에 구수한 충청도 억양이 분분하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친절함을 잃지 않으며 틈틈이 살가운 농담으로 손님들과 우스갯소리를 나누는 모습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정다운 장면이다. 음식을 주문하기도 전에, ‘정’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아니, 정을 움컥 느껴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현미집의 메뉴는 ‘머리 고기’와 ‘칼국수’ 이렇게 두 가지다. 그러나 단일 메뉴로 여기고 머리 고기와 칼국수를 하나의 세트처럼 주문하길 권한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에 앞서 이 둘의 균형을 ‘완벽한 결속’이라 표현해 두고 싶다.
 

식탁에 먼저 놓이는 건 머리 고기다. 새우젓, 풋고추와 생마늘, 고추장이 함께 따라와 머리 고기를 뒷받침한다. 어느 하나도 허투루 놓인 것이 없다. 미각·시각·과학적으로 모두 충족되는, 최상의 궁합만이 놓여있다. 혓바닥과 입천장 사이에 놓인 고깃살은 삽시간에 결대로 흩어져 본래의 형태를 잃고 만다. 조직감이 원체 부드러워 치아가 시원찮은 어르신들이 잡숫기에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촉촉한 살코기와 고소하고 찰진 비곗살은 잡내 하나 없이 은은한 육향을 전달한다. 거기에 새우젓 중의 최고로 치는 육젓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는 맛이라 할 수 있다. 

첫 방문 당시 기자는 친할머니와 동행했는데, 평소 “개갈 안 나네”란 혹평과 “먹을 만하네”가 최상의 호평인 할머니께서 “돼지머리 고기는 원래 이렇지 않은데 이이(주인) 솜씨가 좋다”며 인정한 맛이니 오죽하랴.
 

 머리고기·칼국수 전문 ‘현미집’
37년째 이어내려온 고유의 맛
어머니 손맛 그대로 물려받아

잠시 기사의 첫 줄로 돌아가보자. 현미집의 주방은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불이 켜진다. 그러나 손님을 맞는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무렵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 7시간의 공백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공백은 사실 완성도 높은 머리 고기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으로, 매끄러운 식감을 위한 손질에만 2시간가량이 소요된다. 

김준환 대표는 “뼈가 큰 어미 돼지만을 사용하며 크기에 따라 조리 시간이 상이하기 때문에 부지런을 떨 수 밖에 없다”며 “완전히 익힌 뒤에도 한 김을 빼줘야 쫄깃한 식감의 머리 고기를 맛볼 수 있기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머리 고기와 함께 나오는 육젓 또한 너무 짜지 않도록 조절하는 작업을 거친 뒤 손님상에 올리게 된다. 생마늘과 풋고추를 찍어 먹는 고추장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듯 부수적으로 취급될 수도 있는 새우젓과 고추장에도 정성을 들이는 것은, 맛있다와 맛없다를 가르는 음식의 첫인상이 바로 ‘간’에 있기 때문이다. 

달이 걸린 시간부터 해가 중천으로 내지를 때까지 대표님은 분주히 움직이며 공백처럼 보이는 시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이런 지난한 작업과 세심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대표님이 손님에게 건네는 건 머리 고기로 위장된 정성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머리 고기 접시가 반쯤 비워질 무렵이면 머리 고기의 짝꿍 칼국수가 나온다. 생김새만 보면 ‘흔해 빠진 보통 칼국수잖아?’라며 섣불리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칼국수에도 머리 고기만큼이나 동일한 정성이 들어간다. 오로지 멸치로만 깔끔하게 우려내되, 머리 고기의 육젓과 고추장처럼 비법적인 과정이 추가된다.
 

거기에 제철 해물이 더해지니 바다의 풍미가 은근하게 입안을 감돈다. 조개류의 경우 해감 문제와 껍데기 파편 등으로 식사에 불편감을 줄 수 있어 아예 배제하고, 날이 추워지면 굴을 날이 더워지면 바지락 살을 사용하신다고 한다. 때문에 날이 제법 추워진 요즘은 통영 굴이 들어가게 된다. 

비법이 숨겨진 멸치 육수에 제철 해물 그리고 고명처럼 뿌려진 김 가루가 마음까지 따스하게 물들인다. 충청도 사람이라면 국물을 한 입 뜨자마자 “구수룸허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여기에 면발은 육수와 같은 식감으로 착각할 만치 잘 어우러져, 몇 번 씹지 않아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탓에 게눈감추듯 먹게 된다. 

칼국수만 따로 떼놓고 본다면 그다지 특별하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두드러지지 않는’ 맛으로써 머리 고기와 기막힌 맛의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만약 칼국수가 뚜렷한 개성을 지녔다면, 머리 고기는 이에 눌려 곧장 잊혀졌을 것이다. 과유불급은 이렇듯 음식에도 적용된다. 칼국수와 함께 나오는 직접 담근 김치 또한 맛깔스럽다. 한국인들은 김치만으로도 식당 주인의 솜씨를 가늠하니, 김치만 보더라도 모두 현미집에 합격점을 줄 것이라 짐작한다. 
 

모두 국내산(홍성·광천·서산)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값이 더 나가더라도 맛을 위해 최상품만을 고수하고 있는 대표님의 철학이 음식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기사의 서두에 현미집의 머리 고기와 칼국수를 ‘완벽한 결속’이라 표현했는데, 사실상 이런 음식은 이 세상에 수두룩하다. 그러나 현미집의 머리 고기와 칼국수처럼 치장되지 않은 채 정직하게 맛있는 음식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니 뭐든지 급속도로 변해가는 이 시대엔 더없이 귀한 집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과 묘하게 결부된다. 

현재도 굳건히 주방을 지키고 계신 어머니의 굽은 등과 주름진 손등이 현미집의 역사이자 손맛의 원천이며, 이를 그대로 이어오신 현재의 대표님(아드님) 덕에 37년 전부터 지금껏 고유한 맛이 유지될 수 있었다. 

시골 풍경과 정겨운 분위기, 소박하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는 식사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마치 좌우로 흔들리던 시계추가 멈춘 듯한 이곳에서, 누군가는 추억을 먹으러 또 다른 누군가는 정을 느끼러 올 것이다. 더불어 젊은 세대에게도 이런 게 ‘진짜 음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점점 사라져 가는 정이 담뿍 담긴 음식으로, 현미집으로 모두를 초대한다.
 

현미집 머리 고기와 칼국수.
현미집 머리 고기와 칼국수.

◆현미집 메뉴

△칼국수 8000원
△머리 고기 1만 5000원  


  • 주소: 광천읍 광천로329번길 29
  • 영업시간: 11:30 ~ 재료 소진 시
  • 휴무: 매일 영업, 사장님 개인 사정 시 휴무
  • 문의: 041-641-1792, 010-2036-8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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