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
상담학 박사
칼럼·독자위원
중독은 단순히 반복되는 행위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종종 외면된 감정, 다루지 못한 상처, 그리고 채워지지 않은 관계의 빈틈에서 비롯된다.
이 사례는 도박과 게임 중독에 빠졌던 한 청년이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폭력, 도박이라는 복합적 가정 문제 속에서 어떻게 무너졌고, 상담을 통해 어떻게 회복과 성장의 길로 나아갔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회복은 단지 개인의 변화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해 가는 집단적 변화의 이야기였다.
K군(30·남)은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도박과 음주 폭력으로 인해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다. 그 후 내면의 결핍과 불안을 안고 살던 그는 성인이 되어 ‘토토’라는 인터넷 도박과 롤플레잉 게임에 몰입하게 됐다. 토토로 2일 만에 3000만 원을 벌었던 경험은 그에게 강력한 쾌감과 통제감을 제공했고, 이는 반복적인 소액 결제와 카드 돌려막기로 이어졌다. 며칠씩 PC방에 머무르며 식사와 수면을 잃었고, 사회적 관계와 가족과의 소통도 단절됐다. 경제적 파탄과 무기력은 그를 점점 더 깊은 중독의 늪으로 끌고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담자의 여동생이 상담을 신청했다. “오빠가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걷는 것 같아 무섭다”는 그녀의 말은 가족 내 상처의 반복과 위기감을 반영한다.
가정방문상담자는 초기 면접과 검사 등을 통해 K군의 중독 수준과 정서 상태를 파악했고, 인지행동치료(CBT), 동기강화상담(MI), 가족치료, 그리고 애도 상담(Grief Counseling)을 통합적으로 적용했다.
상담 초반, K군은 스마트폰과 게임 사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였으나, 상담을 통해 매일 운동하기, 가족과 식사하기, 알바 구직 등 실천 중심의 과제를 수행하며 점차 변화했다. 게임 사용 시간은 줄고,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으며, 실제 제조업체에 취업해 주간과 야간을 번갈아 일하는 책임 있는 모습으로 변화해 갔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게임이나 도박에서 얻던 심리적 기능을 다른 긍정적 활동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돕고, 가족 내 역할과 감정을 재정립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그러나 회복의 여정은 직선이 아니었다. 상담 중반,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병간호가 시작되며 내담자는 다시 정서적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 아래 병간호에 적극 참여했고, 동생과 교대로 병원을 지키며 아들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 상담자는 애도와 정서 표현을 도우며, 내담자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과거의 상처를 받아들이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개입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지금 잘하고 있어”라는 자기 지지 문장을 훈련하며, 그는 점차 자기 존중감을 회복했다.
어머니 역시 상담을 통해 자신이 아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에게 했던 방식과 같은 언행을 반복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후 자녀들과의 관계를 재정비하며 지지적인 존재로 변화했고, 신앙을 회복하며 내적 안정도 찾아갔다.
이 사례는 중독이라는 문제를 단지 개인의 의지나 성격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상처이며, 회복도 관계 안에서 가능함을 보여준다. K군의 변화는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지만, 더욱 인상적인 것은 가족 전체가 고통의 패턴을 인식하고,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이다. 이는 상담자가 사용한 통합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접근이 만들어낸 의미 있는 결실이며, 무엇보다도 ‘회복은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