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따라 모습은 변했지만 옛정서 그대로 담고 있는
특별한 음식으로의 초대

[홍주일보 예산=이정은 기자] 다섯 갈래로 뻗은 덕산 읍내교차로를 빠져나와, 시골 읍내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어느 골목엔 드물고도 귀한 음식을 파는 곳이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리 잡은 건물들 사이, 숨바꼭질하듯 몇 발치 물러서 있어 까딱하다간 그냥 지나칠지도 모를 ‘또순네식당(대표 김경자)’은 덕산 토박이라면 모두가 아는 집으로, ‘밴댕이’를 주메뉴로 40여 년간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어서오세유’라고 적힌 현판에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들어선 실내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널찍하고 쾌적하다. 그리고 이곳엔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한식집보단 일식집에 들어선 듯한 냄새가 지배적이다. 이는 아마도 가운데 놓인 나무 난로 탓인 듯하다. 밴댕이와 나무가 만나 마치 가다랑어포와 같은 내음을 자아낸다.
메뉴는 참으로 간결하다. 밴댕이찌개, 청국장찌개, 간재미무침. 거침없이 밴댕이찌개를 주문한다. 곧 밴댕이 뚝배기를 빙 둘러싸 8개의 찬과 상추쌈이 놓인다. 보글대는 표면이 잦아드는 동안, 반찬을 하나하나 맛본다. 서해·충청 일대의 밥집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반가운 어리굴젓과 무심하게 썰리고 버무려진 듯 보이는 반찬들이 하나 같이 좋은 맛을 갖고 있다. 특출난 맛이라기보단 집밥처럼 그윽한 맛이다. 다음으론, 국자로 조심스레 밴댕이를 들어 올린다. 얼핏, 밴댕이 양이 제법 많다. 밴댕이에 익숙한 기자는 숟갈로 밴댕이를 대강 잘라 국물과 함께 비벼 한 입 넣는다. 잔가시들이 입안을 간지럽히고 속살은 있는 듯 없는 듯 밥알과 뒤섞인다. 별다른 식감 없이 맛과 향으로써 작은 몸뚱이가 이토록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낸다니, 새삼스레 놀란다.
그러나 밴댕이 입문자라면 아무래도 비릿함을 강하게 느낄 터, 그렇다면 상추쌈과 쌈장으로 중화와 조화의 효과를 누려보시라. 직접 제조한 쌈장은 집된장의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감칠맛을 담고 있어 문턱을 한결 낮춰주는 역할을 해낸다.
지역민들에게 ‘또순이 엄마’로 불린다는 김경자 대표에게 ‘또순네식당’의 시작에 대해 물었다.
“우리 딸래미 별명이 또순이라서 내가 또순이 엄마지. 그래서 또순네식당이 됐고요. 뭐 자식들 키워야 되니까 먹고 살려고 시작한 거죠. 처음엔 연탄불에 구운 밴댕이를 팔았어요. 목로주점 식이었는데, 손님들이 자꾸 밥 한 공기만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시절엔 술주정뱅이들도 많았어~ 그래서 이럴 바엔 식당을 하자 싶어 식당으로 바꾸게 된 거예요.”
밥을 찾는 손님들로 인해 밴댕이는 안주에서 식사가 됐고, 만화방을 운영하던 김 대표는 원체 좋던 손맛을 살려 지금껏 음식 장사를 이어오게 됐다. 김 대표의 딸 또순이는 말한다.
“우리 엄마는 이것저것 금세 뚝딱뚝딱 만들어 내고 워낙에 음식 솜씨가 좋았어요. 뭐든 주고 싶어 하고요.”

누군가에겐 생소할 수도 있는 밴댕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지역민은 물론 타지역 사람들도 찾는
맛집이 된 또순네식당의 인기 메뉴는 역시나 ‘밴댕이찌개’다.
“처음에는 밴댕이랑 간재미무침만 팔았어요. 그런데 장사를 하다 보니까 생선을 안 먹는 분들도 있고 해서 대략 10년 전쯤인가, 청국장을 추가하게 됐죠. 그래도 맛을 아시는 분들은 밴댕이를 주기적으로 찾아드시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밴댕이찌개가 제일 잘 나가요.”
주로 인천·강화 일대에서는 밴댕이를 회로 즐기지만 충청도 일원에서는 찌개나 조림 방식이 흔하다. 그러나 식재료와 식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밴댕이찌개’는 옛정서가 담긴 점차 낯설고 생소한 메뉴가 되고 있다.
“예전에는 밴댕이를 삐득삐득 말려서 간장에 조리는 방식으로 팔았는데, 요즘엔 그 맛을 몰라주니까 현재 스타일로 바꾼 거예요. 정말 한참 전 얘기죠. 그리고 저희는 정말 뭐 보여드릴 게 없어요. 좋은 재료 쓰는 거? 정말 그거 말곤 뭐가 없어요.”
또순네식당은 온 가족이 일군 밭에서 웬만한 재료를 충당하고 있으며, 밴댕이의 경우 목포 수협에서 경매를 통해 사들이고 급냉·보관해 사용하고 있다.

깨끗하게 손질을 마친 밴댕이는 맹물과 갖은양념을 만난다. 여기에 비린 맛을 잡기 위해 마늘잎이 들어가고, 감칠맛을 위해 소량의 참치 액젓이 들어간다. 밴댕이는 쉽게 으스러지기 때문에 뚝배기에 따로 담아 손님상에 나가기 전 최소 2번에서 4번 정도 미리 끓여낸다. 김 대표는 이 과정이 기술이라면 기술일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매운 맛을 선호하는 손님에겐 얼큰한 버전으로도 조리 가능하다.
“반찬은 굴젓 빼고는 다 만든 거예요. 나물 종류는 제철에 나오는 걸 사용하고요. 며칠 뒤엔 머위 따러 가요.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쳐 놓으면 손님들이 계속 찾으셔서 편하게 갖다 드시도록 셀프 코너처럼 마련해 둬요.”
고즈넉한 영역, 이곳엔 기자를 포함해 아는 맛을 찾은 손님들 뿐이라 고연시리 서운함이 생겨난다. 밴댕이가 가진 특유의 맛으로부터 불러일으켜지는 정서, 그곳으로 범위를 확장시켜 보시길 추천한다.
◆또순네식당 메뉴
△밴댕이찌개 12,000원 △청국장찌개(2인 이상) 12,000원 △간재미무침 大 30,000원 中 25,000원 小 20,000원
ㆍ주소: 충남 예산군 덕산면 봉운로 9
ㆍ영업시간: 오전 8시 ~ 오후 8시 |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ㆍ전화번호: 041-337-4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