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묘기지권과 지료 지급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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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묘기지권과 지료 지급의무
  • 노한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4.17 10:39
  • 호수 886호 (2025년 04월 17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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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노한장</strong> <br>청운대학교 부동산경영학과 교수<br>​​​​​​​칼럼·독자위원<br>
노한장 
청운대학교 부동산경영학과 교수
칼럼·독자위원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유교적 매장풍습에 따라 조상이 돌아가시면 양지 바른 산자락에 모시고, 분묘를 관리하는 것을 자손들의 당연한 도리로 여겼다. 그러나 당시에는 산림국유원칙에 따라 임야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으며, 임야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상을 당하면 부득이 타인의 토지에 묘를 쓸 수 밖에 없었다. 토지소유자도 비록 남의 조상이지만 이를 존중했으며, 설사 토지소유자의 동의 없이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도 이를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산림의 경제적 가치와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의식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타인의 토지에 무단으로 설치한 분묘를 둘러싼 분쟁과 소송이 크게 증가해 사회문제가 됐다. 마침내 조선고등법원은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자는 그 분묘를 소유하기 위해 그 분묘가 있는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지상권과 유사한 물권을 갖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라고 판결을 내렸으며, 이를 분묘기지권이라 한다. 그 이후 대법원도 이러한 법리를 인정해 오랜 기간에 걸쳐 분묘기지권 관습법의 내용을 보충하고 발전시켜 왔다.

분묘기지권은 분묘의 소유를 위한 목적으로만 타인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며, 결코 소유권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묘기지권은 분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타인의 토지를 사용하는 권리이므로 분묘가 설치된 기지 자체만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분묘기지권의 존속기간에 관하여 약정이 없는 경우, 판례는 권리자가 분묘의 수호와 봉사를 계속하는 한 그 분묘가 존속하는 동안은 분묘기지권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므로 영구·무한의 분묘기지권도 가능하다. 분묘기지권과 관련해 최근 들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분묘기지권자에게 토지사용료, 즉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이다. 타인의 소중한 토지에 무단으로 분묘를 설치한 경우 분묘기지권자는 적어도 지료 정도는 지급하고 사용하는 것이 사유재산권보장이나 공평의 원칙에 부합한다할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수십 년 동안 분묘기지권자는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오다가 최근에 이르러서야 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판례를 변경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의 유형에 따라 그 지급 시기를 달리하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우선,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다음 20년간 평온·공연하게 분묘의 기지를 점유함으로써 분묘기지권을 취득하는 이른바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자는 토지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의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자기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그 토지를 양도하면서 분묘를 이장하겠다는 특약을 하지 않음으로써 분묘기지권을 취득하는 양도형 분묘기지권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부터의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자는 지료의 소급지급 의무가 없으나, 양도형 분묘기지권자는 토지의 소유자가 언제 지료를 청구하느냐에 따라 상당 기간 소급해서 지료를 지급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동안 분묘기지권은 대법원 판례를 통해 관습법으로 인정왔는데, 2001년 1월 13일부터 장사법이 시행됨에 따라 이 법 시행일 이후에 토지소유자의 승낙 없이 무단설치한 분묘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분묘기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펴본 분묘기지권에 관한 내용들은 2001년 1월 12일 이전에 설치돼 분묘기지권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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