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저미는 흥얼거림… "변치않는 가치 노래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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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저미는 흥얼거림… "변치않는 가치 노래하고파"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3.06.14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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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홍성출신 소리꾼 장사익

우리시대 최고의 가객(歌客), 광천 삼봉이 고향인 이 시대의 진정한 소리꾼, 음악은 어디에도 얽매지 않고 자유스러워야 한다고 수줍은 듯 단호히 말하는 사람, 노래는 팔자고 운명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소리꾼 장사익. 홍주신문 6주년 창간특집을 맞이해 서울 종로구 홍지동 자택을 찾아 장사익의 소리인생과 음악에 대한 가치관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종로구 홍지동 부암산 자락에 자리 잡은 그의 서울집은 도심 속 무릉도원 같은 곳이었다. 집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장중하면서도 소박한 멋이 느껴지는 공간에는 구석구석 그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특히 그가 정성을 들여 가꾼 정원에는 사시사철 다른 풍경을 뽐내는 꽃나무, 과일나무, 들꽃들이 한 가득이었는데 때마침 흰 나비 몇 마리가 들꽃 사이로 춤을 추며 한 폭의 풍경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가 집안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정원에는 손수 만든 솟대와 제주도에서 들여온 석불 등이 부암산을 병풍으로 그림처럼 늘어서 있다. 정원에 마련된 작은 탁자에 앉아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고향 삼봉의 잊지 못할 석양빛이 떠오른단다.

“삼봉의 농악대가 유명했습니다. 아버지가 거기에서 장구를 치고 곧잘 따라다녔던 동네아저씨가 태평소를 부셨어요. 노을 속에서 농악대가 풍악을 울렸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지요” 노을 속 마을 농악대의 기억은 그의 거칠고 고단했던 서울생활에서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옹암포에 배가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물길이 막혀 옛 모습이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광천과 옹암포를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막혔던 물길을 다시 트고 주변의 피섬과 갈대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광천 삼봉에는 친지들이 살고 있어 왕래가 잦다는 그는 홍성에 내포신도시가 조성되는 등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광천만은 전통의 특색을 가진 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남기를 염원했다.
 

 

소리 통해 대중과 소통… 서민들 삶의 목소리 대변
광천·옹암포 활성화 위해선 막혔던 물길 다시 터야

장사익(63)은 1994년 장사익 소리판 ‘하늘가는 길’로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기침(1998), 허허바다(2000), 꿈꾸는 세상(2003) 등의 음반을 냈고 1996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장사익 소리판 하늘가는 길’ 공연이후 60여 차례의 공연이 국내외에서 있었다. 1995년 ‘뜬쇠사물놀이’로 KBS국악대상, 1996년 ‘뿌리패사물놀이’로 연거푸 KBS국악대상을 수상했다.

국악을 바탕으로 무르익은 그의 노래는 독특한 창법을 이루면서 소리꾼 ‘장사익 창법’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결국은 장사익의 ‘노력의 산물’이다. 그래서 그가 판을 벌이면 언제나 관객은 자리를 꽉 메운다. 가축 장사를 하던 평범한 농부의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난 그의 모습도 전형적인 농부의 그것이다.

그는 마흔이 넘어 내린 자신의 결단에 대해 아무것도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그는 독학으로 1년 동안 단소를 배우고 5년 동안 피리를 익혔으며 1986년부터 태평소를 불었다. 1993년에는 전주대사습놀이에서 공주농악태평소로 장원을 차지했고 같은 해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는 '결성농요'로 대통령상을 탔다. 1994년에는 또다시 전주대사습놀이에서 금산농악 태평소로 장원을 차지했다. 결국 태평소가 장사익의 노래 길을 열어 준 셈이 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흥얼거림의 미학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2007년에 환경재단이 선정한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에는 세상을 밝게 하는 그의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노래에는 진정성이 담겨져 있어야 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자신만의 목소리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노래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노래만 잘한다면 그건 기교에 불과하죠. 시대를 읽고 사람들의 마음에서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변치 않는 예술가로 기억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노래실력 좋은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한때의 인기에 편승하지 말고 내면을 가꾸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노래를 음성공양(音聲供養)에 비유한다. 부처님 전에서 사물(四物)로 반주하면서 범음(梵音)을 낭송하는 공양을 말하는 음성공양이지만 ‘소리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의 신념이자 좌우명이기도 하다.

“내 옆 사람이 힘들 때 같이 울어주고 기쁠 때 같이 웃어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저는 노래로 그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게 바로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사익은 올해에만 일본, 미얀마 등의 해외공연을 다녀왔고 하루가 멀다한 초청, 기부 공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소화하고 있다. 그의 노래는 언제나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음색은 어느 누구보다도 호소력이 짙다. 모든 공연이 늘 만석을 이루는 소리꾼 장사익의 힘. 그것은 아마도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삶의 진한 목소리를 대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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