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밤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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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밤줍기
  • 서정식<칼럼위원․전 대평초 교장>
  • 승인 2013.11.0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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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시작되는 개천절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웃 중담마을에 사는 친구가 찾아왔다. 초중고 동창이다. 쪽파만 전문적으로 심는 쪽파의 달인이다. 늦여름에 출하한 쪽파가 최고가를 기록하여 수천만원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밤 주우러 가세. 산에 밤이 붉게 쫙 깔려 있어." 나는 밤이 붉게 깔려 있다는 말이 처음에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긴 집게와 양동이, 배낭을 메고 오서산으로 올라가 밤나무가 많은 산 속으로 가서야 실감했다. 내가 등산할 때 이용하는 오솔길 옆인데 정말 밤이 붉게 깔려 있었다. 나는 보이는 대로 정신없이 밤알을 집게로 주워 양동이에 담았다.
"굵은 것만 주워. 그리고 반짝 반짝 윤기 나는 것만 주워. 때깔이 죽은 것은 떨어진지 오래된 것이여."
나는 밤 줍는 재미에 신이 났다. 처음엔 알이 큰 것, 작은 것 가리지 않고 줍다가 나중에는 굵은 것만 가려서 주웠다. 줍는 중에도 밤나무 숲에서 알밤이 터져 툭툭 떨어졌다. 방금 떨어진 알밤은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금새 양동이에 가득 찼다. 그것을 배낭에 넣고 또 줍기 시작했다.
한참을 줍다가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밤나무 단지에 다른 나무가 무성했다. 오히려 밤나무 보다 더 울창했다. 밤나무를 심어놓고 관리를 하지 않아 층층나무, 굴참나무, 굴피나무, 상수리나무, 소나무 등이 밤나무 보다 키가 커 밤나무가 그들 속에 있었다. 이미 큰 나무에 묻혀 죽어가는 밤나무가 많았다. 밤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서 나무높이 10~20m, 직경 1m까지 자라는 양수(陽樹)라 층층나무와 같은 큰나무와는 성장력에 뒤쳐져 도태되고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시절 민둥산인 뒷동산에서 어린 아이보다 작은 조그만 소나무를 뛰어 넘으며 소나무 밑에 감추어져 있는 산새둥우리를 찾기도 했던 시절, 초등학교 운동회 때 찐 밤과 군밤을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 사먹지 못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 이렇게 지천으로 깔려 있는 밤이 그 때는 그렇게 귀했으니… 배낭과 양동이에 가득히 밤을 주어 내려오면서 50년의 세월이 새롭게 느껴졌다.
산 속에는 소나무 간벌을 하고 그대로 두어 지름이 30~50cm되는 나무기둥이 그대로 산에서 썩고 있었다. 추운 겨울 땔감이 부족하여 뒷동산의 생솔가지를 밤에 몰래 베어다 아궁이에 넣던 1950~60년대. 그때는 오서산이 인근 읍면 마을의 연료 창고였다. 광천읍민은 물론 멀리 은하면, 결성면과 보령시 청소면, 천북면에서도 오서산으로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다녔다. 짚과 왕겨 그리고 콩대, 깻대 등 밭농사 부산물과 산에서 해 온 나무만으로 귀한 땔감으로 사용하다가 1960년대 후반부터 연탄이 널리 사용하면서 산에는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고 밤나무 단지가 생겨났다. 그리고 기름보일러가 놓이고 심야전기보일러가 설치되면서 연탄 사용이 줄어들고 시골에서도 귀한 연료이던 밭농사 부산물은 밭에서 그냥 태워 버린다.
네 차례 밤 줍기를 하여 대여섯 말의 밤을 주웠다. 서울 아들네와 대전 막내 동생에게도 한말씩 주었다. 철원에 사는 처형에게도 택배로 보냈다. 나머지 밤은 굵은 것은 저온창고에 보관하고 알이 작은 것은 밤 깎는 기계로 깎아 다시 칼로 손질하여 냉동실에 보관하여 밤밥을 해 먹고 있다. 쌀, 현미, 콩, 수수, 밤을 넣고 밥을 해먹으니 구수하니 밥맛이 좋다. 밤은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다 가지고 있는 식품이며 그 중에 탄수화물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어서 조금씩 넣는 것이 좋다. 또 밤은 비타민C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겨울철 비타민 공급원으로 훌륭하며 철분과 칼슘도 있어 이상적인 식품이다. 또한 술안주로 생밤을 먹고 있는데 숙취해소, 피로회복, 감기예방, 멀미예방에 좋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신장을 위한 과일이라고 하는데 이뇨작용에 효과적이어서 신장병에 특히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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