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와 신(新)갑오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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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와 신(新)갑오개혁
  • 이석호 기자
  • 승인 2014.02.2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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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894년, 조선에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유교적 사회 질서에 바탕을 둔 조선의 고착화된 풍습과 관행을 근대적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개혁을 추진했던 갑오개혁이 일어났다. 갑오개혁은 갑오경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경장(更張)의 사전적 의미는 ‘가야금의 느슨해진 줄을 다시 팽팽하게 당겨 음을 조율한다’는 뜻으로, ‘고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유럽은 르네상스 이후 종교개혁과 산업혁명, 프랑스 혁명 등 문화적 혁신과 과학적 문명의 진보를 통해 획기적인 근대화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고질적인 봉건왕조의 폐쇄성으로 구시대의 문화와 생활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서양문물을 흡수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의 동화와 시대적 의식 전환을 꾀한 갑오개혁은 파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갑오개혁은 정치적인 면에서는 귀족 중심의 정치에서 평민정치로의 폭을 넓혔고 외세로부터 주권의 독립을 분명히 했다.
사회적으로는 신분제도 타파와 노비제 및 연좌법 폐지, 여성의 재혼 보장 등의 변화도 추구했다. 은본위 통화제와 납세제도의 정비, 도량형 개정 등의 경제적인 개혁도 추진했다. 갑오개혁은 유교 문화에 바탕한 폐쇄적이며 쇄국적인 조선 풍습과 관행에 대한 전방위적 변화를 추구했다.
갑오개혁은 조선 정부의 자주 역량이 부족해 외세에만 의존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개혁을 저지하려는 기존 봉건세력의 힘이 컸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좌절됐지만 구시대를 청산하고 근대화를 촉진시킨 획기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지역의 지도자를 뽑는 6.4 지방선거가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 교육감 등의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됐고 후보자들의 출사표가 잇따르면서 선거 구도가 잡혀가고 있다.
출마후보자들은 선거사무실을 개소하고 유권자들을 찾아다니며 표심잡기에 나서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벌써부터 후보자간 과도한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고 공천을 앞두고 정치권 줄대기와 줄서기가 벌어지는 등 과열 혼탁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일꾼을 선출하는 풀뿌리 생활정치 선거다. 지역의 살림살이를 충실하게 챙기고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적임자를 뽑는 주권 행사의 장이다. 중앙정치의 눈치를 보거나 당리당략에 휘둘릴 필요가 없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선거 병폐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는 여야의 암묵적 야합으로 사실상 물 건너갔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선 공약이었던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생각이 애당초 없었고 얼마 전까지도 정당공천제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민주당도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없었던 일로 접었다.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새정치연합 만이 무공천을 고수하고 나섰지만 이마저도 속내엔 대내외적으로 복잡한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어 씁쓸하다.
깨끗한 정치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을 내세운 정치 개혁은 구태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면서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형국이다. 이런 상황은 120년 전 갑오개혁 당시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구시대 정치를 청산시킬 선거 개혁의 공은 이제 유권자에게 넘어 왔다.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하면서까지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태의연한 기성 정치도 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들겠다는 유권자들의 의지와 힘이 발휘된다면 충분히 개혁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질 없는 후보자가 특정 정당에 의존해 무임승차(?)하려는 행위나 구태하고 권위적인 사고에 함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물들을 엄중히 심판해야 한다. 사리사욕을 쫓거나 당선에 눈이 멀어 지키지도 못할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인물들을 높은 공중에서도 먹이를 알아보고 낚아채는 매의 눈으로 골라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옥석을 가려내는 유권자들의 안목과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청마의 해에 맞는 이번 지방선거가 유권자들의 힘에 의해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 참공약과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선거로 정착될 수 있도록 120년 만의 신(新) 갑오개혁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유권자들의 깨어있는 의식만이 선거 개혁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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