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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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3월
  • 최봉순<혜전대 교수, 칼럼위원>
  • 승인 2014.03.0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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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볕 덕분에 장독 뚜껑을 열어 놓고 나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걱정 시키는 미세먼지를 이겨볼 요량으로 애꿎은 생강차를 자꾸 마시며 위로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다행히 생강이 풍년이라 많이 담아 먹고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대보름을 전후하여 다가오는 입춘과 우수 절기에 집집마다 눈에 띄는 글귀가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입춘에 크게 길하고 계절에 따라 경사가 많아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예로부터 입춘일에는 무나 미나리 등 새순으로 채반(采盤)을 만들어 손님 대접을 하였다. 특히 오신채(五辛菜)를 상에 올려 음식의 사치를 누렸다.
오신채는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나물을 말한다. ‘오신반’, ‘오훈채’ 라고도 하는데 자극성이 강하고 매운맛이 나는 채소로 만든 나물을 말한다. 파, 마늘, 자총이(파의 한가지로 더 매움), 달래, 평지(유채), 부추, 무릇, 미나리의 새순 등 8가지 나물 중에 다섯 가지를 선택하여 무쳐 먹었다.
입춘날 오신채를 먹음으로 다섯 가지 덕을 갖추고 신체 모든 기관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건강해진다고 생각했다. 오신채는 궁중에서나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지만 불가(佛家)에서는 마음을 흥분시킨다고 하여 금지하는 음식이다. 선의 경지에 이르려면 다섯 가지 신채를 안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오신채를 먹으면 음심(淫心)이 생기고 분노를 더한다고 하였다.
정조께서 ‘불시불식(不時不食)’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음식에는 때에 맞게 맛을 내야한다’라고 하여 ‘봄에는 신맛을 많이 쓰고 여름에는 쓴맛을 많이 쓰고 가을에는 매운맛을 많이 쓰고, 겨울에는 짠맛을 많이 쓴다’고 하였다. 겨울 동안 신선한 채소가 부족했던 차에 오신채를 데쳐 무쳐 먹으면 맵고 새콤하여 미각을 깨우는 데는 더없이 좋은 음식이다. 궁중에서도 이른 봄이 되면 신선한 나물을 상에 올렸던 기록을 볼 수 있다.
하얀 파 노란 부추 푸른 미나리
승검초와 겨자로 오신채(五辛采)를 만들어
섬섬옥수 받들어 궁궐에 보내니
상에 가득 향긋한 군침 돌게 해
-도하세시기속시-

우리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 이른 봄부터 나물을 뜯어 식탁에 올렸다.
우리만큼 다양한 채소음식이 발달한 곳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산과 들녘에 지천으로 돋아 있는 나물은 봄철 입맛을 돋우는 먹거리로, 몸을 활기차게 해주는 약재로 쓰였다.
봄에 신선한 나물을 먹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겨울동안 신선한 채소를 섭취하지 못한 우리 몸은 저항력이 약해져 있다. 바람이 따뜻해져오면 봄을 타느라 힘들고 나른함을 느끼게 된다. 이 때 기력을 돋워 주는 풋풋한 봄나물로 건강한 식탁을 만들어 나누곤 했다. 예전에는 부족한 식량을 대신하던 서글픈 음식인 나물이 지금은 영양이 듬뿍 든 최고의 자연식이자 웰빙 식품인 것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우리나라 산이나 들에서 나는 나물이 850여종이 된다고 하여 우리가 모르는 나물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생에서 자란 풀들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다양한 효능과 함께 자연의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음식은 우리가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 생명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필수적인 것이다. 철마다 다양한 음식을 먹는 즐거움, 정성으로 차린 소박한 밥상에서 우리는 생명력을 느낀다.
‘인간이 세상을 사는데 두 가지의 도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밖에서 제세안민(濟世安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집에서 좋은 음식 먹고 기운을 차려 높은 뜻을 함양하는 것이다’라고 우리 조상들은 말하고 있다.
정성으로 차린 음식은 세상을 향한 마음으로 이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알뜰하게 준비하는 엄마의 밥상을 바탕으로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아이들의 내적 성장뿐 아니라 가족들의 결속력이 다져지는 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바로 음식인 것이다,
시장에 나가면 봄나물이 지천이다. 봄나물을 조리할 때는 특유의 향이 살아있도록 양념이 지나치지 않게 넣는 것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비결이다. 오늘 밥상에는 달래, 냉이, 쑥, 돌나물 중 어떤 것을 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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