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가 귀를 수미쪽으로 돌리며 소리쳤다.
‘아차’하며 수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곳에서는 기계소리 때문에 평상시처럼 말하면 아무 말도 못알아 듣는다는 것을 개달은 것이다. 그래서 이곳사람들은 퇴근을 해서 조용한 거리에서 얘기할 때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악다구니 목소리로. 아가씨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두들 째지는 목소리이다.
수미는 아저씨에게 기계를 넘겨주고는 앞으로 와서 아저씨가 건네주는 제품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놀라운 손놀림에 수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1분동안 두 개는 해치우는 것 같았다.
30분동안 정신없이 포장을 하고 숨도 돌릴 새 없이 수미는 박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분해되어 펴진 박스를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바닥에 테이프를 붙여 쌓아두어야 하는 것이다.
50여장을 만들고 나니 박스에서 나온 먼지에 수미의 목은 확 막혀오고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그리고 잽싸게 다시 달려들어 밀린 포장을 하고, 또 기계를 잡아주고 박스를 접고...
저녁 8시 수미는 녹초가 된 몸으로 탈의장에 들어섰다. 유니폼이 완전히 소금물에 담근 것 같았다.
“힘들지? 이런 일 처음이라며?”
스물 너덧쯤 되어보이는 여드름 투성이의 아가씨가 웃으며 다가왔다.
“몸도 약해보이는데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네. 어쩌자고 이런 힘든 일을 택했니?”
아가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미의 깡마른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저..”
“응. 내 이름은 정미야.”
“정미언니. 물어볼 게 있는데요. 이렇게 12시간씩 주.야간 맞교대로 일하면 월급은 어느 정도 되나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묻는 수미의 질문에 정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계산을 해보았다.
“글세. 초보자 일당이 6,560원이니까 35만원 정도 될 걸.”
35만원이라는 소리에 수미는 손가락을 꼽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1년이면 420만원. 게다가 보너스까지 하바면 적지 않은 돈이었다.
“언뜻 보면 큰돈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야. 말이 12시간이지. 1초도 쉴틈 없는 12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알아? 게다가 아직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야간일은 또 얼마나 지독한데.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구.”
정미는 지긋지긋한 듯 고개를 흔들어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수미에겐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1년에 42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그 돈이면 아랫동네로 전세방을 얻어 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희망으로 부풀어 있는 너한테 할 말이 아니지만 돈을 벌어도 그게 버는게 아냐. 몇 달만 일하면 허릿병 생기지, 기관지염으로 콜록콜록대지. 한 3년 일하다 그만두면 병신이 따로 없다구. 보약을 몇 첩은 지어먹어야 하는 걸.”
‘그래도 난 할 수 있어. 우리 수진이, 호진이랑 함께 살 수만 있다면 그까짓 고통쯤은 참아낼 수 있어.’
수미는 묵묵히 옷을 갈아입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미 말이 맞는 말이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 짓 하고 있지만 할 짓이 못된다구. 뭐하다 온지는 몰라도 어린 나이에 안됐어. 쯪쯪”
아까 현장에서 본 아주머니가 머리를 빗으며 말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