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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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
  • 승인 2014.11.0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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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결실의 계절인 동시에 사색의 계절로 알알이 익어가는 오곡백과와 산자락에 한들거리는 억새풀도 하나의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겠다. 우리 지역에서도 광천읍과 장곡면 등에 걸쳐 산세를 뻗고 있는 오서산에서 제12회 억새풀 등산대회가 열린다.

해마다 가을이면 정상을 중심으로 억새풀 군락이 은빛물결을 이루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고 천수만과 서해바다까지 바라볼 수 있어 가을 산행의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아직은 우리나라 5대 억새 군락지로 꼽히는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 경남 창녕의 화왕산, 경남 밀양의 사자평, 전남 장흥의 천관산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초록색으로 단장했던 억새는 10월이면 은백색으로 갈아입고 쪽빛 가을하늘 아래에서 억새가 흰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다. 바람의 지휘봉에 따라 하늘하늘 춤을 추는 모습은 아름다움 이전에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한다.

억새와 갈대는 무리를 지어 자라는 습성이나 생김새와 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비슷하여 흔히 혼동하기가 싶지만 억새는 산등성이나 언덕에, 갈대는 강이나 바다 등 물가에 자란다는 점에서 구분이 가능하다. 가끔 들녘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억새이고 길이도 갈대가 억새보다 훨씬 길게 자라며 갈대는 고동색을 띠는데 비해 억새는 은백색의 밝은 색으로 우리의 시선을 끌게 한다.

일반적으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하며 ‘갈대의 순정’이란 노랫말에도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으로 허전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로 비유하는데 우선 갈대는 다른 식물이나 나무에 비해서 약해 보이지만 산자락이나 바닷가에서 몰아치는 세찬 비바람에도 견디어 내는 강함이 장점이기도 하다.

강하고 곧은 나무는 바람에 부러지지만 부드러운 억새나 갈대는 유연한 버드나무처럼 바람을 이용하듯 우리네 인간들도 그 역경을 잘 대처하게 된다. 아무튼 인간은 생각과 불가분의 관계로 고 함석헌옹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으며 어느 성현도 ‘삼사일언’으로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을 하라는 조심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언행심사’라는 말도 있지만 그 단계를 구분한다면 심사언행으로 마음 밭에서 생각이 떠오르고 그 바탕에 말이나 행동이 뒤따르게 되는 것 같다. 우리의 삶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상을 세 부류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어떤 이는 일을 할 때 생각을 한 후에 실천하고 어떤 이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며 성질이 급한 이는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생각하다보면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기에 이와 관련하여 ‘일일삼성’은 하루에 세 가지를 반성하라는 뜻으로 첫째는 부모와 자식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를 반성하고 둘째는 친구와 이웃에게 신뢰를 얻으며 살았는가를 반성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오늘 배운 것을 내 몸에 익혀 완전히 체득했는가를 반성하라고 했다.

아무튼 생각하며 사는 삶이든 살아가며 생각하는 삶이든 인간에게는 항상 생각이 떠나갈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너무도 빠르게 달리고 변화하기에 생각할 여지도 없이 살다보면 때로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망각하고 순간적인 쾌락이나 경박한 처세로 자아상실의 경우가 있다. 이 가을에 생각 있는 정치와 생각을 키우는 교육과 건전한 생각이 소통되는 사회가 이룩되기를 염원해 본다.

이제 억새풀 등산대회의 관객들이 모두 떠난 어느 날 쓸쓸한 가을밤에 홀로 남은 억새는 얼마나 외로울까!를 생각하며 한 시인의 시를 옮겨본다. ‘가을 억새’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손 흔들고 서있는 억새…>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의 바다를 작은 가슴에 안고 돌아서는 하산길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처럼 서러워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새하얀 손짓으로 이별을 서러워하는 가을 여인, 그녀의 이름은 오서산 억새풀이어라! 인생은 나그네길, 이제 내년 제13회 오서산 억새풀 등산대회를 기다리며 이 황금빛 가을을 거두어드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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