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조와 허망한 ‘대의제 민주주의’
상태바
헌법 제1조와 허망한 ‘대의제 민주주의’
  • 강국주<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 승인 2015.02.23 1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익히 아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의 말이다. 바로 이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조항이 뒤따른다. 우리의 헌법은, 국민에게 모든 권력이 주어진 민주주의 공화국이 우리나라임을 천명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民主主義)가 무엇인가. 민(民)이 주인이고 권력의 주체라는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민주시민, 민주국가라는 말을 무시로 쓰고 듣고 익히며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없어 보인다. 왜?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쓰는 우리의 말 습관에도 그 사실은 그대로 묻어 나온다. 레임덕으로 표현되는 “권력 누수”라는 말은 대통령의 권력이 시나브로 약해졌다는 말인데, 권력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여기지 않는 한 대통령의 권력 누수라는 말은 그 자체 모순된 말이다. 헌법 상으로만 보면 권력은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국민에게만 부여돼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분명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고 했는데, ‘대통령의 권력’이라거나 권력을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실세(實勢) 정치인’이라거나 혹은 ‘청와대 실세’라는 말이 무람없이 쓰이는 현실은 무엇 때문인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우리 헌법의 조문이 실제와는 부합하지 않는 허망한 문구이기 때문이다. 그 조문이 유일하게 빛을 발할 때가 바로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투표 당일뿐이라는 걸,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선거철이 아니면, 선거와 무관하면, 실질적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누구 하나 국민에게 권력이 있음을 인정하지도 않고, 당연히 의식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헌법 조문 상의 권력의 주체인 국민들은 선거철에만 반짝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뿐 나머지 360여일은 ‘권력 누수’의 참담함에 몸서리치며 살아간다. 이게 고질화되다 보니 국민 다수는 자신이 권력의 주인임을 애써 외면한 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낼 뿐이다. 대통령의 권력 누수는 심각한 문제인 듯 모든 언론이 호들갑을 떨지만 전 국민의 대다수가 거의 일상적으로 권력 누수를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느 언론도 언급하지 않는다. 만성 질환이 돼버린 탓이다.

왜 이렇게 되었나. 우리의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민주주의를 ‘대의제’ 민주주의로만 착각하고 살았다. 민주주의가 지금처럼 선거철에 투표하는 권리로 격하돼 정의된다면, 우리의 헌법 조문은 “대한민국은 ‘대의제’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선거일에는 국민에게 있지만 나머지 날에는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등에 있다”라고 고쳐져야 할 터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를 대의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치학자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는 오래 전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권력을 대리인에게 위임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아래에서는, 선거일에 투표 한번 하고 나면 어떤 권력 행사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은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 현실을 보면 꼭 들어맞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 불신, 정치 혐오는 무력감의 다른 표현이다. 실질적인 권력의 주인이지만 그것을 행사할 수 없는 국민 대다수는 상실된 자기 권력에 대한 유일한 항의를 정치에 대한 심각한 냉소와 혐오로 표출할 수밖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단순하다.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올바로 지켜내는 수밖에 없다. 헌법 정신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참된 민주주의에 대한 상(像)을, 우리 스스로, 그려나갈 수밖에 없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의 고귀한 정신을 지켜내는 참된 민주공화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빼앗긴 것과 다름없는 ‘나의 권력’을 되찾는 길을 골똘히 생각하고 실천할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