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의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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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의 장독대
  • 장미화 <홍성군장애인종합복지관·주민기자>
  • 승인 2015.04.0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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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망졸망 집 마당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엄니의 장독대(장독 따위를 놓아두려고 뜰 안에 좀 높직하게 만들어 놓은 곳)에 놓여 있는 항아리를 아침저녁으로 보게 됩니다. 엄니가 시집올 때 함께하기 시작해서 자식들이 하나 둘 늘어나듯 항아리식구들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큰 것과 작은 것, 길쭉한 것과 넓쭉한 것, 옛 것과 새 것 용도에 맞춰 각기 자기의 역할에 맞게 장독대를 채우고 있습니다. 매운 맛을 자랑하며 빨강 빛을 담은 고추장 항아리, 사계절 변화의 산물인 깊은 맛을 간직하고 우리네 옛 기억의 맛을 일깨워 주는 된장 항아리, 50여년의 깊은 세월을 함께 엮어내는 간장 항아리, 아무리 어려웠던 시절에도 봄의 새싹을 틔울 씨앗을 품고 있는 씨앗 항아리 등등…… 서로를 보듬고 품어내며 마치 그 자리에 그냥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소리 없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일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을 텐데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장독대는 나의 모든 시름과 아픔을 담고 보듬어 주었습니다. 항아리는 그릇입니다. 그릇은 물건이나 음식을 담는 도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지만 물건이나 음식뿐만이 아니라 제 마음의 기쁨과 슬픔, 아픔, 추억까지도 오롯이 담아 품어주고 있었습니다. 엄니의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는 요술 항아리입니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고 저녁이면 온 가족을 불러들여 지친 하루의 일상을 풀어놓을 수 있도록 자신의 정수(精髓: 뼈 속에 있는 골수)를 내어 줍니다. 독대의 항아리처럼 함께 모여 있음으로 혼자가 아닌 가족이 되고 무방비 상태로 편안한 하루를 마무리하게 합니다.

음식의 깊은 맛을 내어주는 어머니의 장독대를 바라보고 있자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어머니를 닮은 장독대의 항아리들… 모진 세월 사남매를 홀로 키웠듯이 50년의 세월을 묵묵히 함께 해주어 참 고마웠습니다. 가끔은 잘못 건드려 깨지기도 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비바람과 매서운 추위까지 잘 견디며 가족의 먹거리를 지켜준 참 고마운 녀석들입니다. 앞으로도 가족들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건강을 챙겨주게 되겠지요! 항아리가 모여 있는 장독대를 보여드리지 못하는 지면이 아쉽지만 여러분들도 어머니의 장독대 한번 구경 오시지 않으시렵니까? 아픈 마음과 무거운 삶의 짊, 모든 시름을 아무 말 없이 받아줄지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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