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썩 잘 어울리는 호동과 보자는 주문한 냉우유를 맹물처럼 마시며 부담없이 지껄여댔다. 그러나 신중의 귀에는 그 말이 무슨 내용인지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수연의 표정과 숨소리를 통해 그 마음을 읽으려고 진땀 빼는 중 인지도 몰랐다.
수연 역시 샌님처럼 앉아 빤히, 혹은 멍청하게 바라보는 신중의 시선이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잘못 오해하면 사내가 앞에 앉은 여자의 옷을 투시해가면서 그 육체미를 감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자연히 그들은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보자가 수연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수연아, 거기들은 왜 한 마디도 안해? 혹시 가슴이 벅차서 그러는 거 아냐?”
그 말에 신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교실에서 지적받았을 때처럼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갑작스러운 강박관념 같은 게 그로 하여금 엉뚱한 말을 꺼내도록 만들었다.
“사실 이 친구와 난 여기서 열두 시 십오 분 전까지 만나기로 약속 했거든요.”
수연은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보다 더 일찍 왔는데도 이 친구가 먼저 와 골목 입구에 있다가……”
호동이 발등을 밟았다. 신중은 뚝 그쳤다. 때를 놓치지 않으며 호동이 끼어들었다.
“이 친구 아시겠지만 원래 말수가 적죠. 말재주도 그렇구요. 허지만 좋은 녀석입니다. 성적도 우등이고 인간성 역시 금메달 감이죠. 그보다 점심때도 됐고 하니 뭘 좀 시켜서 먹는게 좋겠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 보자의 입에서 떨어졌다.
“좋아요. 점심은 이따가 나가서 먹기로 하고 우선 간식이나 좀 하기로 해요.”
점심으로 빵을 먹자는 게 아니다. 점심은 이따가 밖에 나가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자는 분명한 제안이었다. 그에 대해 호동은 철저한 동질감을 느꼈다. 신중과 수연도 그들 두 사람의 동질감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했다.
제과점을 나선 네 사람은 바로 앞의 육교를 건너 어린이대공원 후문께를 걸었다.
호동과 보자는 어디가서 설렁탕이라도 한 뚝배기 더 먹고 싶었지만 신중과 수연은 반대로 잠시 거닐기로 했던 것이다.
걷다 보니 각각 두 명씩 짝을 짓는 모습이 되었다. 호동과 보자는 걸맞은 뒷모습이면서 앞서서 다정하게 얘기하며 걸어갔다.
새침데기한테는 그래서 그런 별명이 붙여지는 걸까?
수연이 같은 여학생을 두고 하는 말일 터이다. 물론 그런 여자들은 호박씨를 손으로 까지 않고 깔고 앉아 방뎅이로 깐다고도 했다. 물론 엉덩이, 궁둥이, 방뎅이, 엉덩짝, 볼기짝 등등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르도록 이름많은 게 사람의 그 부분이다. (이 경우 남자한테는 별다른 의미대신 왠지 냄새가 날 듯한 기분인 반면 대상이 여자, 더구나 수연이 같은 여학생일 경우 황홀에 가까운 향기가 느껴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앞서서 다정하게 이야기 하며 걸어가는 호동과 보자를 보던 수연이 문득, 닮은 꼴 끼리 놀고 있네! 하며 약올라 한 것 역시 이상하거나 신기할 일 하나없다.
실상은 수연도 곁에 있는 신중에게 무엇인가 말을 걸고 싶었다. 다른 애야 어찌되었든 보자가 샘내도록 정답게 되어지고 싶은 게 수연의 솔직한 야망이었다. 그녀는 신중이 중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약간의 갈등 끝에 혼돈을 가져왔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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