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은 쓸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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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은 쓸지 않네
  •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 승인 2016.01.1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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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시인 이달(6)
▲ 불일암 48×37.

깊은 산(山)길을 찾다가 길이 끊어질 즈음 문득 석벽 사이로 난 작은 돌계단을 따라 오르다보면 필경 오래된 작은 암자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 이르는 길에는 일주문도 없고 표지석도 없어 사뭇 멀고 험하다.
인적조차 없어서 흡사 명묵(冥默)의 세계로 가듯 두렵다.
이윽고 가파른 계단의 끝에 오르면 세속을 털고 적멸(寂滅)의 공간으로 입문하는 화려한 제의(祭儀)에 참여하게 된다. 시인은 빛과 구름, 바람과 물소리가 충만한 천상의 불일암(佛日庵)에 든다.
“산이 흰 구름속에 있어, 흰 구름을 중은 쓸지 않네 / 나그네가 왔기에, 비로소 문을 열고보니, 골짜기마다 솔꽃 가루만 흩날리네.(불일암에서 인운스님에게 지어주다)(山在白雲中  白雲僧不掃 /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종교의 다름을 떠나 한국의 암자(庵子)는 힘들여 찾는 이들을 맑게 한다. 크고 화려한 사찰에서 홀로 깊이 물러나 앉은 한적한 암자는 천상의 세계와 같다.
시인은 그곳에서 ‘흰 구름을 쓸지 않는’ 무위(無爲)를 경험한다. 그것은 본래 산이 흰구름 속에 잇는 것과 또한 구름이 산을 감싸고 있음이 서로 다르지 않아서 인위(人爲)를 더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솔꽃 가루만 골짜기마다 흩날리는 봄날, 불일암의 나그네는 시인 자신이다. 이백(李白)은 ‘구름있는 이별’에서 “어느 산인들 흰 구름 없으랴, 그대 가는 곳 흰 구름 따르리” 이별의 아쉬움을 자기 대신 구름으로 치환(置換)한다.
오늘 우리의 시인 이달은 “흰 구름을 중은 쓸지 않네” 무위(無爲)와 무욕의 경지, 몽환포영(夢幻泡影)의 계율을 말하고 있다.
무엇인가 잡힐듯하다 잡히지 않는 그림자 같은 허망한 세계, 마치 뜬 구름과 물거품 같아서 번개처럼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불의한 욕망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성서에 있다.
시인은 우리에게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며 진정한 무위의 삶을 예찬한다. 필자의 집에서 삼각산 인수봉은 가까이 보인다. 가끔 흰 구름이 거대한 암봉을 감싸 안으면 선경(仙境)이 되는데 자주 볼 수 없어 안타까웁다. 지리산 어느 깊은 계곡에 있을 불일암(佛日庵)을 인수봉 구름 아래 그려서 시의(詩意)를 대신한다.

 

 

 

동양화가, 운사회장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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