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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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안경
  • 변승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6.02.18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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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 나빠지면 자연스럽게 안경을 쓴다. 사물이나 글씨가 명확하게 보이고 답답함도 사라진다. 안경을 쓴 시간이 길어지면 어느 날에는 안경을 썼는지 모를 정도로 익숙해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 중에 하나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삶을 살아가는데 아주 소중한 도구이고 동반자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장래성이 있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다른 데가 있다는 뜻이다. 어린이가 하는 행동이나 말을 듣고 장래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 유명해진 혹은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을 보면,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차이점은 각각의 사람마다 다른 특성이므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공통점은 아무도 그 사람이 후에 사회적으로 유명한 혹은 성공한 사람이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들의 큰 성공이 무모하기도 하고 계획적이지 않았지만 운이 좋았다고 단순히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만약 그 사람이 어릴 적에 보여준 것과 성장 후에 보여준 결과가 다르다면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속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나라 사회에서 아동, 청소년에게 강조하는 것과 관련된 핵심어휘를 살펴보면, 준비하고, 미래로, 세계로, 세계적인, 경쟁, 학업성취, 취업, 성공, 대학, 높은 연봉 등과 관련 있다. 이런 표현들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동, 청소년에게는 오히려, 노는 것, 자연, 천진난만, 장난, 자유, 실수, 말도 안 되는 창의성, 정돈이 안 된, 눈치 없는, 하루 종일 노는 등과 관련된 말이 더 적합해 보인다. 학교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한 아동, 청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런 상태가 12년의 학창시절 동안 유지된다면 무기력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부정적이 되고 보호자와 교사, 그리고 성인과 지속적인 갈등, 음주, 흡연, 가출, 폭력 등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더 무서운 것은 꿈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꿈과 희망을 품지 못하고 산다면 무슨 의미를 갖고 살아갈까?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어떻게 극복할지도 의문이고, 과연 그 청소년은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까? 믿을 만하고 안전하고 재미있고 도전해 보고 싶은 세상일까?

한 가지 꼭 집고 넘어갈 것은 청소년의 흡연과 음주는 그들의 고통과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지 예의가 없거나 일부러 범법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은 대부분 현재의 모습만 보고 비난한다. 처음부터 흡연과 음주를 하지 않는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내적인 갈등과 힘든 상태를 벗어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고,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대화할 대상이 없으므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를 만나게 되며, 같이 어울리다보면 답답함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흡연과 음주를 선택한다. 현재 힘들어서 어쩔 줄 모르는 청소년에게 흡연과 음주를 한다고 혼낸다면 과연 그들은 어디서 무엇으로 힘든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을까?

두 종류의 안경이 필요하다. 현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안경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을 볼 수 있는 안경을 쓰고 싶다. 내 눈에 거슬리는 현재 내 아이의 모습이 나중에성공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성장과정임을 볼 수 있는 그런 안경과, 아이의 아픈 마음을 볼 수 있어, 아이의 아픔을 똑같이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경이 필요하다. 현재의 색안경을 이런 안경으로 바꿔 쓰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를 해보자. “그동안 내가 몰라줘서 미안하구나.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세상 어느 곳에서도,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 스스로 찾다보니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 버렸고 너를 오해하게 되었다. 늦었지만 앞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숫자(성적)와 너를 바꾸지 않을 것을 약속할게. 그리고 어른인 나도 힘든 것이 있다는 것을 조금 이해해 주기 바란다. 처음 엄마와 아빠가 되어 모르는 것이 있고 서투른 것도 많구나. 이 안경을 쓰니 이제야 네가 제대로 보이는구나. 네가 이렇게 아름답고 예쁜 것을 못 보았다니…오늘부터 힘든 일을 함께 고민해보자. 괜찮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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