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겐 아홉명의 조카가 있다. 조카들이 태어나고 보니 고모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바퀴달린 의자를 타고 다녔으니 커가면서 의아해 할 법도 했을 텐데 참 다행이고 감사했던 것은 조카녀석들이 고모의 휠체어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아홉 명의 조카 모두 아기 때는 휠체어를 탄 고모의 무릎에 앉아 있기를 좋아했고 커가며 휠체어가 비어 있을 때는 서로가 앉아 보겠다며 경쟁까지 치열했으니…
휠체어를 5분 탈 때마다 500원씩 내고 타라는 고모의 횡포에도 쌈짓돈 500원을 선뜻 내주고 휠체어를 타는 것이 조카들에겐 큰 즐거움이었다. 작은 휠체어 하나가 어린조카들에겐 놀이터였고 휠체어 주인인 나는 어린 조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휠체어하나로 고모의 위상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으로도 아시리라.
그중 제일 나이어린 조카가 유주라는 이쁜 소녀가 있다. 유치원시절 친구들과 노는 모양을 보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아이들이 자기자랑을 하던 중이었다. 자기네 아빠는 힘이 쎄고, 삼촌은 키가 크다며 힘겨루기를 하던 중 유주의 이야기에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우리 고모는 휠체어를 탄다!!” 고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또 한번은 유원지에 놀러가 휠체어를 탄 남자분을 보게 되었는데, 선뜻 다가가 우리 고모도 휠체어를 탄다며 고모휠체어는 색깔이 어떻고 모양이 어떠하다며 실컷 자랑을 늘어 놓았다. 휠체어를 타는 고모나 휠체어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좋아하는걸 보고 속으로 얼마나 다행스러워 했는지 모른다.
사실 조카들이 휠체어를 탄 고모를 자랑스러워하고 부러워하기까지 한것은 식구들의 영향이 제일 컷으리라. 조카들의 엄마, 그러니까 내게 언니,동생, 형부,그리고 올케가 되는 가족들이 장애인인 나를 어떻게 대하고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할 수 있겠다.
그런 유주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어느날, 오랜만에 만나 내게 하는 말이 “고모! 고모는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잖아요. 그렇지만 절망하지 마세요, 장애인이어도 고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되니까요. 너무 슬퍼할거 없어요!” 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순간 조카 유주에게 빛나던 고모는 어딜 가고 슬픈 장애인이 되어 버린거 같아 마음 한곳이 씁쓸했다.
순간 당황하여 “어머 유주야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어?”라고 물으니 학교에서 배웠단다.
아! 장애 이해교육을 들었나보다. 장애인의 날 학교마다 장애이해교육을 하는데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장애를 극복하고, 혹은 비록 장애인일 지라도, 힘들어도 슬퍼도 모든걸 극복하고 위인이된 장애인들의 사례를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일단 교육을 받은 어린아이들은 장애인은 힘들고, 외롭고 슬픈 사람으로 각인이 되고 분리가 된다.
장애인이라서 힘든 부분은 확실히 있다 하지만 꼭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힘든 과정이 있는걸! 그래서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수성… 장애를 차이로 보고 그런 차이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바라봐주는 감수성! 그리고 장애로 인한 차이를 인정하고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한 상황에 대한 해법을 만드는 것.
필요한 보장구, 시설을 보강하고 장애, 비장애가 분리되지 않고 통합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서로 부대끼며 어울려 자연스럽게 서로 스며드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게 아닐는지.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