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1일 한솔기 커뮤니티센터 2층 회의실 빔프로젝터 화면으로 오래된 사진하나가 띄어졌다. 사진 하단에 찍힌 날짜는 1965년, 무려 51년 전 사진이다. 사진이 크게 확대되어 보이자 모인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덩달아 커졌다.
“이 사람은 누구여~”, “아 그 00이 엄니 아녀!”, “저기 나도 있네!”, “저기 있는 사람들 중에 살아있는 사람 몇 안되는구만” 겨우 사진 한 장을 볼 뿐인데 그 안의 이야기는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어르신들의 입에서 살아 끊임없이 흘렀다. 이렇게 어르신들을 지난 과거로 빠져들게 하는 이 시간은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 공동체미디어분야로 지원받은 ‘한솔기만인보’ 프로젝트를 제작하는 시간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솔기권역의 농업회사 ‘매죽헌’이 지원하였고, 지역의 청년미디어활동단체인 ‘생활창작집단_끌미디어’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고 있다.
‘한솔기만인보’ 말 그대로 한솔기마을 언저리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란 뜻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실무기획자이기도 한 필자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가장 궁극적으로 남기고 싶은 것은 바로 공동체기억의 복원이다. 낡은 사진 한 장 보는 것이 무슨 공동체적 의미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필자 생각은 다르다. 지난 시간들 안에는 현재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분명히 후손들에게 전해질 가치가 있는 중요한 것들이다. 그래서 ‘한솔기만인보’에는 앞으로 이런 것들, 소소했지만 정겨운 그 때 그 시절의 풍경들, 이를테면 ‘정월대보름에는 집집마다 뭘 했는지?’, ‘지금은 사라진 산수초등학교에 가는 길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지금은 정차하지 않는 화양역 앞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등등을 어르신들의 그림, 글, 그리고 목소리를 통해 담을 예정이다.
‘한솔기만인보’가 더 소중하고 중요한 이유로 몇 가지가 더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어르신들이 점점 사라지고 안 계신다는 거다. 그 현실은 지난 11일 흑백사진을 꽉 채운 사람들이 이제는 절반의 절반도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통해 피부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또 이 프로젝트는 참여하는 어르신들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예전 흑백 사진을 보면서 자신만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이 날 어르신들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생기있는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마을에 느티나무 하나가 있다. 혹은 버스정거장 하나가 있다. 누군가는 여기서 첫사랑 친구와 비를 피했을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여기서 아쉬운 이별을 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개인의 기억들을 모아보면 그 장소는 모두의 기억, 즉 공동체의 기억이 된다.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은 그 집단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끈이 될 수 있다. 앞으로 넉 달 남짓한 시간동안 한솔기권역 마을 어르신들과 영상으로 라디오로 그리고 마을신문으로 기록하게 될 ‘한솔기만인보’ 사뭇 기대가 된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