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 바빠 서둘러 가셨나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걱정하던
당신이 홀연히 자리를 비우셨습니까?
그대는 꽃다운 젊은 시절 이 마을 저동네
땀 흘리며 뛰어다니던 모습이 선합니다.
재건국민운동, 새마을 운동, 공직자로서
사명감이 투철했던 당신이 금마면 갈산면
등 면정은 물론 홍성군정을 불문 부임한 곳마다
커다란 업적을 남기시고 지역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며
때로는 새마을 사업 등 어려운 사업을 펼치시며
농로 개설, 마을 안 길 조성, 주택개량 사업 등 을
추진하면서 이해 상충으로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며
고향 발전에 앞장서서 해결해온 노고를 이제서야
영전 앞에 엎드려 감사드리고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여러 기록을 남긴 당신은 우상이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항상 수석의 자리를 간직하였고
공직자 연수에서도 1위를 도맡아 하셨으며 자녀들도
다복하게 이끌고 모범을 보이며 사회활동에 임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니 가장으로서의 도리와 직분은 물론
퇴직 후에도 남다른 열정과 투지로 만해 한용운선사
고택에서 해설사로 다년간 수고 하셨으며 홍주문화
연구원장을 맡아 홍주지역에 산재된 문화 역사유적을
발굴 고증 기록 보존에 힘써왔으며
금마 철마산 3.1운동 성지를 조성 관리 운영하는데
앞장서왔으며 금마는 물론 홍성군정 등 지역사회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긴 당신의 노고와 발자취가
이지역사회에서 길이 메아리 칠 것 입니다.
고향에서 서울에서 만나면 다정하게
악수를 나누며 향수에 젖는 이야기 꽃을 피우던
그대와의 다정다감 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렇게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60여년 쌓은 우정
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1963년 군복무를 마치고 귀향한 나는
25세 젊은 나이에 면정업무를 잠시 함께했었고
서울특별시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시정을 위해
청춘을 다 바쳐 1999년 정년을 맞았고
2000년 재경 금마면민회를 창립 초대회장을 맡았을 때
명예 금마면장에 위촉되었을 때 그렇게 반갑게 축하해주었던
그대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못다 이루신 일들은 이 지역을 보살피는 금마면민과
홍성군민에게 맡기시고 당신을 아끼고 사랑했던 모두가
이제 편안한 유택으로 인도하오니 영면하시기를
삼가 기도하며 명복을 비나이다.
2016. 7. 18
형제처럼 고락을 함께했던 우정 어린 박상현 합장 배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