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광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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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광망 사랑
  • 정규준<한국수필문학진흥회이사·주민기자>
  • 승인 2016.08.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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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녹여버릴 것 같은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독 생각나는 일이 있다. 25여 년 전, 내 나이 삼십대 초반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낡고 오래된 연립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꼭대기 층인 3층에서 살고 있었는데 여름이면 슬래브 옥상에서 내려오는 열기로 숨통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과 같으면 에어컨이 일반화되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지만 그때는 비싸기도 하고 물량도 달려 서민들은 구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한 남자가 건물 옥상에 나타나더니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옥상 한쪽 공간의 4면 벽에 철주를 세우더니 옥탑 위로 올라가서 옥탑 꼭대기와 철주들을 굵은 끈으로 연결했다. 그리고는 그 위에 검은 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은 건축사처럼 망설임 없이 이어졌다. 다만 현장에 처음 임하는 듯, 정성을 다하려는 듯 차일을 덮었다 뜯었다 하면서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오전부터 시작된 작업은 오후 늦게야 끝이 났다. 사람들이 호기심에 차서 올라가 보았다. 방공포망과도 같은 차일이 그의 거주 공간 위 옥상에 보란 듯이 설치되어 있었다. 차일은 햇볕이 최대한 차단되면서 큰 바람은 무리 없이 통과하고 작은 바람은 머물다 갈수 있도록 지혜롭게 쳐져 있었다. 내부는 대포라도 옮겨다 놓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어 있었고 바닥은 햇빛이 차단되어 시원해져 있었다. 원시인의 집 같이 투박함과 엉성함이 군데군데 보이긴 하였지만, 오히려 그것은 순박한 그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갑자기 공동주택 옥상에 어울리지 않는 시설물이 설치되었으니 미관상 좋을 리 없고, 주민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것이니 관청에 신고가 들어갈 만도 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의를 걸기는커녕 오히려 감탄해마지 않는 것이었다. 남자가 차일을 친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젊은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아내는 둘째 애를 임신했는지 배가 남산만큼 불러와 있었다. 찜통더위 속에서 만삭이 되어 힘들어하고 있는 아내를 위하여 궁여지책으로 옥상에 단열장치를 마련해놓은 것이다.

그의 아내는 낮에는 시원해진 집에서 편히 지내다가 밤이면 남편과 그곳에 나와 돗자리를 깔고 별을 쳐다보며 행복에 겨워했다. 바로 옆집에 살던 아낙은 자기는 남편이 바람이 나 속 썪고 있는데 옆에서는 팝콘 터지듯 사랑꽃을 피우고 있다며 부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 일은 동네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화젯거리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남자는 아파트로 이사해 좋은 거주 환경에서 살고 있다. 남자가 어쩌다 그 곳에 들르면 주민들은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며 반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어떻게 공동주택에 보기 흉한 차광망을 칠 생각을 했는지 민망하다며 얼굴을 붉히곤 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팔짱을 끼고 눈을 맞추며 말했다.

“당신의 그 순박한 사랑이, 내게 당신을 평생 동안 사랑하도록 했지요.” 세상물정 모르는 순수함으로 가정을 사랑하고 맡겨진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며 살아왔던 바보 이반과 같은 남자, 그 남자가 바로 나였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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