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같은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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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같은 나의 삶
  • 이은희<장애인창의문화예술연대 대표·주민기자>
  • 승인 2016.10.25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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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눈을 뜬다. 중학생 딸아이의 아침준비를 한다. 보통은 밥 한번 차리는 게 뭐 대수라고 몇십분 정도 뚝딱 밥을 차려줄 테지만, 휠체어를 타고 높은 싱크대를 이용하려면 사실 마음 먹은대로 후다닥 되지 않는게 휠체어탄 장애인의 부엌살림이다. 8시 아이 학교를 보내고 집안청소를 시작한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 빨아 널고,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한 후 출근준비를 한다. 씻고, 옷 입고, 화장을 한 후 학교 수업할 준비물을 챙기고 강의장으로 향한다. 꼬박 세 시간 동안의 출근준비다. 차안에서 몸을 좀 누이며 가뿐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문질러준다. 마치 42.195km를 달린 마라토너 같다.

한번은 정리를 못한 집안을 보고 가까운 지인들은 “이궁~ 조금씩 시간을 내서 정리하고 닦으면 될 걸 왜 이리 지저분하게 하고 살아!” 라고 핀잔을 줬다. 잠시잠깐 서운한 마음이 들어, 생각해 보세요! 자전거를 탄채 빨래를 넣고 청소기를 돌리고 밥을 짓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모든 걸 자전거를 타고 생활한다고 상상해 봐요. 걷는 게 아니라…

아직도 가장 가까운 지인들도 우리집 냉장고에 반찬을 넣어 줄때 내손이 안 닿는 높은 곳에 올려놓을 때가 있다. 어이쿠! 비상용 긴 막대기로 살살 치며 기를 쓰고 꺼내다보면 결국은 바닥에 내리쳐 사단이 난다.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르는 게 휠체어 탄 삶.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나 보다. 하긴 나 역시도 다른 유형의 장애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살아갈까?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에는 완벽한 이해란 없는 거겠지. 남들은 몰랐을 휠체어 탄 나의 이야기. 겉모습은 우아하지만 발밑으로는 동동거리며 죽을 힘을 다해 저어대는 백조같은 내 삶을 오늘 한번쯤은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다섯배, 열배의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 살림과 일을 병행해야 하는 삶이 버거워져 멍 할 때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공적인 장애인 인식개선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장애인 한사람 한 사람의 일상적인 삶을 들여다보며 건강한 삶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온다. 딸아이 저녁은 인스턴트 미역국. 딸아이 어렸을 적, 그러니까 주부로서의 역할만 할 때만 해도 반찬에서 쿠키, 빵까지 직접 해먹이며 유난을 떨었던 난 요즘 인스턴트 팩음식 애용자가 됐다.

며칠째 인스턴스 음식을 먹이며 지쳐 고꾸라지고 싶지만 다시 일어서는 건 딸아이가 있기에! 결국 내 아이를 지켜줄 것은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건강한 사회가 아닌가. 아이들이 내가 쓴 글을 보며 누구하나라도 마음이 건강해지고 단단해지길. 이러한 여성장애인의 삶이 어딘가 누군가에게 건강한 삶의 원천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오늘도 나는 또 툴툴 털어 버리고 다시 일어선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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