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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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5>
  • 한지윤
  • 승인 2016.11.18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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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그렇게도 그 여자에게 매혹되어 있는가?”
지금 일동은 영재학교에 다니고 있는 여자와 모종의 재미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런가? 그럼 라이스카레 세 그릇과 비교하면 어떤가. 그 여잔?”
교수는 예리한 질문 방법을 썼다.
“어디의 라이스카레입니까?”
“그렇지, 서울 라이스식당의 맛이 더 좋지……”
서울 라이스식당이라고 함은 서부역 근처 일대에서 예로부터 유명해서 학생들이 많이 가는 집이다.
“문제없어요.”
“왜 문제가 없다는 건가?”
“그녀 쪽에 매력이 있습니다.”
“네 그릇이면 어때?”
“그래도 안 되겠네요.”
“결혼이라도 할 생각인 모양인데……”
“아뇨, 그런 따위 여자와는 결혼할 수는 없죠.”
단순히 여자라는 섹스, 그 섹스를 좋아하는 이유로 소영이가 일동이에게 혐오를 느낀 것은 아니다.
소영은 세 학생들 가운데서 일동이가 전형적인 시골사람이라고 단정했던 것이다. 그것은 사투리, 포크나 나이프 사용법, 아니면 서양국수를 먹을 수 없다는 의미의 시골 사람이 아니었다. 소영은 일동이에게서 정신의 빈곤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연숙과 소영이가 경성여자대학에서 서로 알게 되었고 그 후 일동이와 연숙의 만남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영은 일동과 그의 여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숨통이 막힐 지경이었고 이윽고 소영은 손교수댁에서 만났을 때를 비롯해 자초지종을 연숙이에게 이야기해 버렸던 것이다.
“그만 두는 편이 좋아. 단념하는 게 좋을 거야.”
소영은 진심으로 충고했다.
“벌써 체념했어. 염려마……”
연숙이도 그 무렵에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녀석 비겁해, 미련한 녀석이야.”
소영은 연숙이를 조금도 위로하려 들지 않았다. 사랑에는 과감한 결단이 중요한 것이다.
“어떻게……자세히 좀?”
연숙이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물었다.
“일동이란 사람은 필사적으로 시험공부를 한 결과로 S대학에 입학했고, 이젠 마치 잃어버린 청춘을 한꺼번에 몽땅 되찾기나 하려는 듯 혈안이 되어있는 천박한 인간이야. 그런 인간은 너무 타산적이고 인정머리가 없어. 친구들이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욕을 했었지, 지조가 없는 자야. 사회학 과목인가에서도 단위를 값 싸게 파는 선생만을 선택해서 자신의 기분에 맞지 않더라도 그 선생에게 적합한 답안을 쓴다는 거야. 우익에는 우익스타일로, 좌익에는 좌익스타일로, 자유자재인 걸, 그런 재주는 천재야.”
“많이 달라졌군.”
“달라진 게 아니야. 그런 소질밖에 없는 인간이야. 출세 구멍을 찾아 헤맬 것이고 부잣집 딸을 색시로 얻어들이는 걸 인생 최대의 목표로 생각하게 될 테니까……”
“아, 완전히 실망이야!”
“S대학교의 시골출신들에겐 흔히 있는 일이지, 지식과 도덕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걸.”
여름이 되었다.
일동과 첫사랑이 그렇게 끝나고, 부모들이 권하는 결혼을 거절하고, 서울로 뛰쳐나온 이래, 부모자식 간에 혈육을 끊다시피 하고 있던 연숙은 여름 방학이라고 하지만 갈 곳이 없어 기숙사에 그대로 틀어박혀 있었다.
소영은 이러한 연숙의 사정을 알고 기숙사로 찾아 갔다. 그녀를 불러내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이미 연숙은 5일간의 여행을 예정하고 기숙사를 떠난 뒤였다.
어디로 여행을 떠났는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던 소영이에게로 며칠 후 연숙이로부터 한 장의 그림 엽서가 날아왔다. 충주호에서 보내 온 것이었다.
-아르바이트로 그림을 가르쳐 주는 유치원선생의 권유로 아동화 강습회의 합숙 차 이 곳에 왔다. 내 일신상에 예상도 못했던 새로운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사건들도 잇달아 일어나고 있고……지금 시원하게 한숨 잘 자고 일어나 네게 새삼스레 편지를 쓰고 있다.-
소영이는 문득 연숙이가 충주호에서 일동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소영이의 예상은 들어맞지 않았다. 연숙이가 그곳에서 만난 상대는 일동이가 아니라 유문식이라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강습회장은 도에서 세운 ‘고원의 집’ 이었다. 그곳은 다섯 채의 숙소와 중앙의 강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숙은 친구인 선생과 함께 제2동 제3호실의 대여섯평 정도의 숙소를 배정받았다.
네명과 함께. 여자들은 대개가 유치원선생이었고 미술대학을 나와 개인 화실을 갖고 있는 여자도 있었다.
연숙이가 제2동의 조장인 유문식 선생을 본 것은 숙소의 뜰에서였다. 따가운 여름 햇볕이  내리 쬐이는 가운데 유선생은  새하얀 와이셔츠의 옷소매를 아무렇게나 걷어 올리고 직원인 듯한 사람과 상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 다발의 기름기 없는 머리카락이 깨끗한 느낌의 이마로 흘러 내려오는 것을 그는 손으로 쓸어 올리면서 어린아이 같이 구김살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키가 훤칠했다. 유선생을 보자 연숙은 그에게서 어떤 매력을 느끼기에 앞서 일동이를 잃어버리고 난 뒤 마음속에 아픈 상처가 웬 일인지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유선생에 대한 연숙의 호의는 괴로운 일이 많았던 나날들의 일을 유선생과 같이 훤칠한 사나이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욕망으로 되어 나타났다. 유선생은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같이 젊어 보였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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