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한 선비 이의무(李宜茂) 선생 음택지 취적형(吹笛形) 일명 퉁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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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한 선비 이의무(李宜茂) 선생 음택지 취적형(吹笛形) 일명 퉁소혈
  • 편집국
  • 승인 2008.09.10 11: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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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사랑방

▲ 내포풍수지리연구회 이상운 회장

이의무(李宜茂). 1449년(세종31년)~1507(중종2년), 조선초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형지(馨之)), 호는 연헌(蓮軒), 아버지는 온양군수 추(抽)이며 어머니는 예문관대제학 윤회(尹淮)의 딸이다.
1467년(세조13년) 사마시를 거처 1477년(성종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박사. 장례원(掌隷院)사평(司評)을 역임하고 1487년 성균관 전적으로 ‘동국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하여 녹피(鹿皮)를 하사 받았다.
이해 홍문관 교리로 밀양에 파견 되어 흥학(興學)에 관한 일을 조사 보고 하고 이듬해 사헌부 지평 1492년 홍문관응교로서 형벌을 남용하여 임실현감 노처리(盧處利)를 치사(致死)하게 한 사건으로 파직 되었다.
1495년(연산군1년) 사간원 사간, 이듬해 사헌부 집의 상의원정을 역임하고 1498년 무오사화로 평안도 어천역(魚川驛)에 유배 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502년 성균관사성 군기시정에 보직 되었으나 정치가 문란해짐을 보고 외직을 청하여 홍주목사로 나갔다가 기한 내 조세를 수납(輸納)하지 못하여 한때 투옥되기도 하였으나 1507년 (중종2년) 선정으로 표리(表裏)를 하사 받았다.
기도(氣度)가 활달하고 시문(詩文)에 능하였으며 등조(登朝)한지 30여년에 조금의 저축도 없이 가세가 늘 청빈(淸貧) 하였다.

▲ 입수봉과 묘소

묘지는 충남 당진군 송산면 도문리 능안 산79번지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덕수 이씨의 고분군이 있는 곳으로 당진시내에서 송산면 소재지를 지나 삼월리와 무수리를 거처 십 여리 가다보면 우측에 이의무신도비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 신도비는 1540년 중종25년에 건립 되었으며 비 몸과 지붕돌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각 수법이 섬세하며 선이 뚜렷하다.

▲ 포근한 안산과 수구

전하는 말에 의하면 묘소 동편 400여? 지점에 용천이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비석이 완공 되던 날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비문은 중종대왕이 내린 것이며 원래의 비는 훼손 되어 다시 세운 것이며 원래 비를 받치고 있던 비희(??)라는 받침석이 세월을 말하여 주고 있다.
이 묘역은 왕릉과 견줄만한 방대한 크기로 형성 되어 있으며 그 혈은 물형상(物形相) 취적형(吹笛形)으로 일명 퉁소혈 이라고도 한다.
주산(主山)은 목체(木體)로 송산면에서 가장 높은 99?의 봉화산이며 남쪽에서 좌선(左旋)한 맥이 서쪽으로 들어오므로 유입수(酉入首) 좌향은 신좌을향(辛坐乙向)으로 놓았고 물은 북서간과 남 서간 에서 생겨나 남 동간으로 나가니 해미(亥未)득수(得水)에 묘파(卯破)로 금국(金局)을 형성하며 십이운성상(十二運星相)으로는 생입수(生入首) 양좌(養坐)대병(帶病)득수(得水) 태파(胎破)이며 물형상 취적형(吹笛形)은 피리 형상으로 저와 비슷하나 옆으로 부는 것이 특징이며 그 맥이 길고 혈장은 좁으며 뭉클뭉클 맥을 끌고 내려가야 진혈(眞穴)이며 그래야 여러 기의 묘지를 조성 할 수 있다. 

▲ 피리 모양의 긴 혈장

이곳 또한 역시 아들 영의정 이기와 우의정 이행의 묘소를 비롯하여 맨 아래 말 무덤까지 피리의 구멍처럼 여러 기의 묘지를 조성하여 놓았다.
산이 높지 않아 위엄은 없으나 온화하고 양명함이 주변의 소나무와 회화나무와 함께 잘 어울려 포근함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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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중 2017-06-30 12:44:33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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