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건축가 거위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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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건축가 거위벌레
  • 박승규 전문기자
  • 승인 2017.11.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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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박사 박승규의 곤충 이야기<11>
거위벌레가 지은 집을 반대로 풀어 본 모습.

지난 초여름 어느 날 집 앞에 있는 작은 산에 올랐다. 산의 입구부터 이름 모를 풀들이 덮어 버린 길을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오랜만의 산행인지라 조금만 걸어도 숨이 목까지 차올라 힘이 들었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수많은 곤충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기에 바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리나무 잎을 열심히 뜯고 있는 잎벌레, 뜨거운 여름을 마다하지 않고 짝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딱정벌레, 참나무 구멍에서 어쩌다 고개를 내밀다 내 인기척에 놀라 나무에서 땅으로 뚝 떨어져 죽은 척 하고 있는 넓적 사슴벌레에 이르기까지 초여름의 푸른 숲은 곤충들의 놀이터다. 이렇게 푸르른 숲 속에서 마치 기린처럼 긴 목을 가진 거위벌레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위벌레는 주로 잎을 말아 자신의 새끼를 위한 집을 짓고 그 속에 알을 낳는다. 밤나무, 오리나무, 참나무 등 주로 활엽수의 잎 가장자리를 잘라 입으로 둘둘 말고는 그 속에 알을 낳는다.

그렇다면 왜 밤나무, 오리나무, 참나무 등의 잎을 선택해 집을 지을까? 그것은 바로 이런 활엽수가 내 품는 방어물질 냄새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방어물질에서 나는 냄새로 자신의 새끼가 먹을 기주식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맥에 물어서 낸 흠집을 확대한 모습과 한가운데 배치한 알.

거위벌레 성충은 자신의 집을 지을 잎을 발견하면 바로 잎의 넓이, 두께 등을 잘 살펴보고는 거리낌 없이 집을 짓기 시작한다.

몸이 튼튼하고 큰 몸집을 가진 녀석들은 크고 단단한 잎을, 몸집이 작고 연약한 성충은 여린 잎으로 골라 집을 짓는다.

거위벌레의 몸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크게 잘 발달돼 있다. 밤나무 잎이나 참나무 잎처럼 넓고 단단한 잎도 쉽게 잘라내어 끝에서부터 잘 말아 올려 집을 짓는다. 

어떤 생물학자는 거위벌레가 집을 짓는 모습을 관찰하고는 마치 훌륭한 건축가가 손쉽게 집을 짓는 것에 비교하기도 했다. 이렇게 거위벌레의 집 짓는 모습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몇 마리 집을 짓는 모습을 관찰해 보면 마치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거의 같은 모습과 순서로 잎을 잘라내고 정해진 순서대로 말아 올려 집을 짓는다. 

등빨간거위벌레의 잎 말이 과정을 살펴보면 자신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후손을 위해 집을 짓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잘 말아 올린 집을 하나하나 반대로 풀어 보면 정교한 집짓기 과정을 알 수 있다.

단단한 잎맥에 정확한 간격을 정해 흠집을 내어 단단한 잎에 수분이 흐르지 못하게 해 힘이 없어져 축 늘어진 잎을 어렵지 않게 말아 올릴 수 있게 재단한 모습을 어찌 작은 미물의 행동으로만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가져 보았다.

그것도 주맥에 구멍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주맥의 3/4의 깊이만….
이만하면 거위벌레가 진정한 건축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쉽게 잎을 재단하여 집을 지을 수 있는 비밀은 거위벌레의 넓적마디의 이중 구조로 발달된 근육을 힘점으로 하고, 넓적다리 마디와 종아리마디의 연결 부분에 형성된 돌기를 받침점으로, 종아리 마디를 작용점으로 하는 지레의 원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사람의 새끼손톱보다 작은 거위벌레가 지레의 원리를 집짓기에 응용할 수 있을까? 참으로 신기하고도 신기한 자연의 모습이다.

박승규 전문기자<내포곤충학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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