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집단주의와 합리적 개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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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집단주의와 합리적 개인주의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01.1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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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선 <본지 취재부장>

얼마 전 어느 분과 인터뷰하는 중 이런 이야기가 오고갔다.
“그런 거 아시죠? 지역 내에 다 알 만한 사람이니 뭐 잘못해도 그저 쉬쉬하고 덮고 가는 거? 시골에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죠. 기자님이니 더 잘 아시죠?”

물론 안다. 그리고 기자라서 더 괴롭다. 기자의 소명의식을 운운하며 끝까지 밝히고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파고든다 한들 이미 그 사람은 지역 내 저명인사라 그 정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지금 누군가 콕 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물론 제 발이 저리다면 그것까지는 말리지 않겠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마을 단위로 공동체주의가 형성돼 있다. 더구나 요즘 들어 개인 소외와 양극화 문제로 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공동체주의와 집단주의는 하나의 소속으로 사람들이 뭉쳐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이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공동체주의는 하나로 묶여있어도 개인이 개인으로서 자기 소신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집단주의는 개인이 전체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공동체를 위장한 집단주의다. 이에 관한 실례는 주변에서 종종 발생하는 이른바 ‘텃세’라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얼마 전 충남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충남지역 청년농업인에 대한 편견과 텃세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충남연구원 김기흥 책임연구원은 ‘충남리포트’(288호)에서 “청년농업인이 지역에 들어올 경우 가족들의 반대와 이웃들의 시선이 있다”며 “귀농인의 경우 연고가 없어서 느끼는 텃세가 있으며 이는 직·간접적으로 좋은 땅과 주거지에 대한 정보의 취약성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밝혔다.

홍성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어 홍성고와 홍성여고를 졸업하지 않으면 홍성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다 아는 공공연한 얘기다. 그런데 꼭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일까? 홍성에 학교가 홍성고와 홍성여고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나머지 학교에 다닌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홍성에 살고 싶겠느냐 말이다.

그런 한편 최근 손석희 JTBC 앵커에 의해 소개되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개인주의자 선언’의 저자 문유석 판사는 “우리 사회는 아직도 어사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벌하는 것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고 말한다. 

요즈음 홍성에서는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마을 대소사에 참여하면서도 적당한 관계 유지를 통해 합리적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절대 비난할 문제가 아닌 박수 치고 환영할 일이다.

자신의 기관에 속하는 사람들끼리만 똘똘 뭉쳐 들어오려는 사람 박대하지 말고, 기관이나 단체에서 누가 봐도 잘못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쉬쉬하지 말고 진위를 분명하게 가려 책임 여부를 묻고, 행정에서도 사실만을 모면하려 하지 말고 정확하게 밝힐 것은 밝히는 태도, 합리적 개인주의의 시작이다.

문유석 판사는 “있는 것을 그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출발점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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